다시 읽는다 / 추선희
이보다 더 멀어질 수 있을까 싶게 소설과 멀어진다. 소설에 책임이 있다기보다 삶에 이유가 있는 성싶다. 작위 속 누구의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가 더 급박하다. 조금 양보하더라도 소설 안과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여 같은 소설을 두 번 읽는 일은 좀체 없다.
그런데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었다. 독서 모임에서 정한 것이라 생각 없이 읽게 되었다. 고갱의 삶에 바탕을 둔 극적인 내용이 유명해서일까,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처음 읽는 것인지 읽었던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서글프게도 이제는 스스로의 기억을 믿지 못할 정도로 둔해졌다. 책장을 넘길수록 주인공 스트릭랜드에 매혹되었던 기억이 여러 군데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언제 읽었는지 궁금했지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다 읽고 나서 독서노트를 살펴보았다. 1987년 11월이었다. 스트릭랜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두 대사가 있었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상처를 입은 것은 용서할 수 있지, 하지만 자기를 위해서 희생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 절대로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는 거야.”
“스트릭랜드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미를 창조하고자 하는 정열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마음의 편안함을 조금도 주지 않았던 것이죠. 끊임없이 이리저리로 그를 계속해서 흔들어대고 있었지요.”
첫 대사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하여 남편을 버리고 결국에는 자살한 여자에 대해 그가 더할 수 없이 차갑게 뱉은 말이다. 1987년 11월이면 결혼 1년 전, 한 사람이 매끄럽지 못하게 나가고 다른 한 사람이 들어오기 전 공백의 시간이다. 상처, 용서, 희생이란 단어가 들어옴직하다. 상처를 주고받았고 다행인지 둘 다 희생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제는 상처가 이야깃거리로 둔갑했고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대사를 찬찬히 읊조려 보았다. 나의 이십 대 후반은 음악, 미술, 문학 아무것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미와 창조에 쏠리는 씨앗이 묻혀 있었던 것일까. 이유를 모른 채 그 무미한 삶이 편안하지 않아 스트릭랜드의 확실한 흔들림이 부러웠던 것일까. 지금은 많은 시간을 음악에 할애하고 문장을 가다듬으며 그림이 위안이 되는 일상에 이르렀다. 스트릭랜드처럼 살 수 없지만 그 비슷한 삶을 동경하는 한 사람이 내 안에서 죽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번 독서에서는 더 많은 문장에 밑줄이 그어진다. 그런데 이전 것과 겹치지 않았으며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갔다. 이번에 가장 먼저 밑줄 친 것들은 이런 것이다.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주고 싶다.”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개성에 유달리 호의를 갖는 내가 보인다. 사람의 외양이건 집이건 그림이든 사진이든 그렇다. 특히 문장에서 작가만의 스타일이 드러나지 않으면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에 작가의 내면 풍경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세계가 간직한 수수께끼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스타일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것으로 여기기에 나만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늘 염두에 둔다. 『달과 6펜스』에 끌렸던 이유도 어쩌면 내용보다 문체이다. 건들거리고 냉랭하고 거리감을 확보하려는 쾡한 문체가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간주했던 정서에 대한 관삼을 반영한다. 어느 심리서에서 마음의 구십 퍼센트가 정서라는 말을 읽고 깊게 동의했다. 그러므로 시대와 사조에 상관없이 정서를 일으키지 않는 예술은 그 이름을 떼어버려야 한다. 예술이라면 만인의 마음에 그 나름의 경로를 통하여 정서라는 이름으로 전달될 것이다.
둘을 조합하면 예술은 개성을 잃지 않되 만인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겠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바르지 않을까. 예술이라는 영토를 기웃거리며 고심하는 사람이 될 줄 삼십 년 전에는 짐작하지 못했다.
책장에서 옛 소설 하나 뽑아서 다시 읽어볼까. 줄거리야 상관이 없다. 오래 사랑받는 소설에는 욕망을 건드리고 불안을 부추기어 괴롭히는, 혹은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야, 라고 자장자장 안심시키는 인물들이 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믿고 싶지 않은 우연으로 점철된 시간의 무더기를 건너 뛰어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나보리라. 그들이 뱉은 어떤 문장은 숨어들고 어떤 문장은 새삼 떠오를 것이다. 둥실 떠오르는 그 문장들로써 나의 작금을 해석해보리라. 그리 보면 내가 책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셈이다. 언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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