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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달콤한 식사 / 윤 영

달콤한 식사 / 윤 영

 

 

 

셋이 언제 바다 한번 다녀오자.”

목적지 없이 가다가 간판이 근사하거나 인적 드물면 그냥 닿지 뭐.”

어제 후배와 통화를 했고 지금 바다로 간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한 계절이 잰걸음이다. 푸르지도 그렇다고 붉거나 누렇지도 않지만 여름을 벗어난 가을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어디쯤이더라. 바다에 매인 빨랫줄을 본 적이 있는가. 흰 빨래가 해풍에 마르는 중이었다. 목장갑이며 앞치마가, 가운이 모든 게 흰빛이다.

그곳엔 왠지 주차라는 말보다 정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만한 집이었다. 이층 목조 계단을 올라 창문을 열고 가을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안을 본다. 바다는 절반으로 나누어졌다. 통유리로 달 것이지 왜 반 토막을 냈을까. 한 테이블의 손님만 있는 집. 고추냉이며 고등어며 샐러드가, 달걀찜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호사스러움을 누리는 횟집. 민박이 가능 하느냐고 물었다. 12만 원에 밥을 해먹을 수 있으며 동해를 통째로 방에 들일 수 있다고 한다. 민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이 그냥 물었다. 꽁치 한 마리 더 구워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할 일 없이 골부리를 빨았다.

삼십 대 후배, 마흔네 살의 나, 그리고 친구가 또 바다를 본다. 운전을 하는 후배는 일찌감치 마셔야 술이 깬다며 곱빼기로 마셨고 친구는 술 대신 물을 마신다. 아무리 술이 달다고 해도 단맛을 모르는 친구와 단맛을 아는 나와 후배 우린 십수 년을 만났다. 이런 곳에 살면 그놈의 바다고 파도 소리고 지겨워 원수 같진 않을까.

우리의 부드러운 살결과 광어의 씹히는 살결에 술잔은 잘도 비워진다. 비워지는 술잔만큼 인간이 태초에 풀지 못했던 화두로 떠오른 사랑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우리는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안주를 먹듯 입안에 넣고 굴린다. 확실한 게 있다면 나이에 따라 생각의 폭과 대화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가령 십 대나 이십 대에는 사랑만 있으면 평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간방 사글세 하나 얻어 아침이면 콩나물국에 저녁이면 행인들의 발자국도 행복으로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섹스는 인간이 가진 성적 욕망의 배설물이거나 부부간의 숙제 혹은 남자들의 대를 잇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이라고 치부했다. 십 년 정도야 거뜬히 정신적인 사랑만 운운하며 살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하기야 신보다 내가 더 신이라고 생각한 날이 절반을 넘었으니까.

서른을 넘기면서 어설픈 카멜레온이 되어 갔다. 적당하게 돈 좀 있고 괜찮은 직장에 몸담고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문화를 즐기는 정도면 된다고 말이야. 지난밤 땀 흘린 만큼 아침 반찬이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도 농담과 진담이 가미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결국, 육체적인 행위 역시 행복을 좌우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는 것에 수긍했다고 할까. 이십 대의 내가 삼십 대의 나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거지같은 생각이 들지 않은가.

사십을 넘기니 야누스가 따로 없었다. 삼십 대의 모든 의식주에 적당하게를 넣을 줄 아는 예의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적당하게로 만족이 안 된다. ‘정신적인 사랑절름발이라고 못 박았다. 내 생각이나 의견이 정답일 수만은 없다. 나는 나니까. 살면서 자꾸 솔직해 진다는 거다. 인간의 속물근성인지 모르겠지만, 마음만큼 몸 역시 솔직해졌다. 삼십 대에는 그저 눈 딱 감고 기다려주는 게 현모양처요 정숙한 아내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난 수시로 그의 몸을 더듬는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육체를 나눌 수 있다며 수시로 눈웃음을 보내기를 즐긴다.

맛있는 식사는 아직 이어진다. 종내에는 섹스의 행복론까지 밥상 위에 올랐다. 신이 만든 행복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이 섹스라지 않던가. 중독도 그런 중독이 없단다. 돈 들지 않는 중독이요 행복한 중독이요 사랑을 동반한 중독이라니 수긍이 가지 않는가. 사랑과 육체는 공존한다는 것에 결론을 내렸다. 괜찮은 명답의 도출이라며 잔 부딪혀 건배하고 해변에 앉았다.

간혹 사랑과 섹스에 괴리를 두어 쓸쓸함을 만드는 이들이 종종 있으나 이들에게 섹스는 한낱 허무 덩어리가 아닐까. 사랑 없는 섹스는 목마름이며 미성숙의 단계만 밟는 꼴이다. 섹스 없는 사랑 역시 꽃 피우지 못하는 꽃일 뿐이다. 누가 섹스를 물질적이고 즉물적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곧 사랑이며 신뢰가 내미는 평화의 땅에 깃드는 통로다. 달콤한 마음이며 부드러운 선물이다. 감사를 동반한, 전신의 깊이를 눈으로 보여 주는 행위이다. 나아가 내가 가진 생명과 그가 가진 세계에 서로를 합일시키는 것이리라. 몸도 마음도 온전히 하나 되어 평화 안에 뒹굴 때 그에게 겸손하고 나에게 겸허해 진다. 내일을 위한 역동의 힘이기도 하다.

다시 바짓단 둥둥 걷고 물에 든다. 조약돌을 줍고 발가락으로 장난을 치며 등대로 걸어가는 세 명의 여자 뒤로 햇살 뜨겁다. 바다로 난 빨랫줄에 그 빨래 잘 마르겠다. 오십 줄에 들어 다시 소주잔 기울이며 섹스와 사랑에 관해 열띤 이야기 나온다면 오늘처럼 달콤한 식사가 될까. 어떤 색깔로 어떤 옷을 갈아입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