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 윤태림
앞으로 대문의 문패는 남편의 것이 아니라, 아내의 것을 달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를 가리켜 남성 우위, 남자가 지배하는 나라라고들 하지만 사실과는 틀린 말이다. 세상의 남편들은 아내의 지시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침 인사인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는 사회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던 데에서 연유한다. 그리하여 자고 일어나면 ‘어젯밤 하루 무사히 지냈구나’하고 목 언저리를 더듬어 보고는 ‘아직도 목이 붙어 있구나’ 하는 안심과 더불어 저녁이야 어찌 되든 아침은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던 때의 유물일 것이다. 그토록 우리의 생활은 먹고 살기에 위험이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직장에 나가기 위해 한 발짝 대문 밖을 나서면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긴장감과 더불어 1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자동차가 인도에 예고도 없이 덮치는 수가 있고 별안간 비가 쏟아지면 길을 걷던 사람이 떨어진 전선줄에 감전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빼앗기는 수도 있다. 또한 자동차에서 내뿜는 독가스 같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사람의 신경, 폐(肺), 눈은 물론 성욕마저 감퇴시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산다는 것은 곧 투쟁이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이 날 지경이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도 깡패 안 만나면 다행이고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면 크게 감사해야 한다.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전이 안 되어 길이 보이면 또한 다행이다.
그러나저러나 아내 팔자는 상팔자다. 벌어다 주는 것을 쓰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오늘은 요것조것을 사고 내일은 무얼 하고 곗돈에 얼마 찬거리에 얼마 떡값에 얼마라고 예산을 짠 다음에는 쓰기에 바쁘다.
그야 쓰기에 바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적게 벌어오면 야단만 치면 되고, “아무개는 당신과 같은 나이에 과장 사장도 되고 집안도 호화롭게 꾸미고 옷도 몇 가지가 되고 그럴 듯한 집에서 TV, 냉장고에 떵떵거리고 사는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사람이길래 그 흔한 뇌물 하나도 못 받아먹고 주는 것도 싫다니 내 참 기가 막혀 죽겠어요. 당신하고는 살 수 없으니 이제는 이혼이라도 해요.” 하고 덤비지 않는다면 큰 다행이다.
매일 돈 벌어오지 못한다고 직접, 간접,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려보고 무시하고 말도 안 들으니 에라 ‘홧김에 술이나 한잔 먹으로 나가자.’ 했다가는 몽둥이가 날아 들어올 판이니 세상에 여자같이 편한 존재는 없으리라.
한자에 안(安)자를 가리켜 집안에 여자가 들어앉아 있어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여인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니, 집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논리가 전개될 것이다.
일전에 어느 여대에 초청을 받아 강연인가 하는 것을 한 시간 가량하기로 되어 있어서 갔더니 어지간히 떠들어대어 말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단상에 서서 잠깐 기다려보고, 노려보고 해도 아무 반응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대갈일성(大喝一聲)을 하였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리 말이 많고 시끄러우냐, 한시라도 입을 닫고 있으면 입에서 구린내가 나는가, 입속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겠는가. 하여간 이 대학뿐 아니라 여대라는 곳은 아디를 가나 만찬가지다.
도무지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데 여대의 남자 강사 한 분이, 애가 밥을 빌어먹을지언정 다시는 여대에 강의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가.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는 우리 엄마가 어떻고 우리 오빠가 어떻고 영화나 옷타령 정도이니 그런 이야기는 휴식 시간에나 하라고 호통을 쳤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불려가 야단을 친다는 것이 실례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떠들어댔으면 그랬을까를 독자는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훨씬 더 떠든다는 것은 여자 학교에 있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공감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이 떠드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즉 그들이 집안의 주인이고 보면 남자들을 지배하고, 명령을 내리고, 지휘 감독을 하자니 자연 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 훈장, 목사, 장교들이 원래 남을 가르치려니 말이 많은 것과 똑 같다.
한때, 히피다 무엇이다 하여 머리를 길게 기른 장발족을 단속한 일이 있어 더러운 놈들 꼴 보기 싫은데 잘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인권유린이다, 무엇이다 하고 반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원칙으로 따지면 머리는 남자고 여자고 기르는 것이 원칙이다.
군중들이 왜 머리를 깎는지는 모르나 유교의 사상이 아니더라도 머리털은 정력의 일부이므로 깎으면 깎을수록 손기(損氣)가 되는 것이고 정력이 감퇴된다. 그래서 한방의(韓方醫) 중에는 머리를 옛날 우리나라 처녀들이 길게 댕기 늘이듯이 길러서 상투 대신에 구렁이 모양으로 뒤틀어 얹고 다니는 양반도 있었다.
나무는 뿌리가 굵고 잔뿌리가 많아야 잘 자라듯이 인간은 머리에 털이 많아야 머리가 명석해진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위생에도 해롭다. 그러므로 외국에서는 아이들 때부터 머리를 기르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 때부터 머리를 박박 깎는다. 이것은 일본의 유물이지, 우리나라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생각이 딴 곳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판단을 잘못하면 이런 과오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내가 주인이노라 하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이다. 남자는 종이고 주인은 어디까지나 여인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일찍 죽고 단명하지만 여인들은 오래오래 살고, 남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지만 여성은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염색체 자체가 여성의 것은 완전한 것이고, 남성의 것은 이지러진 쭉정인 것이다. 하여간 앞으로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눈은 새해를 맞이하여 달라져야 할 것이다.
윤태림(1908-1991) 교육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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