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과 미니스커트 / 김현승
아무리 생김새가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그 체격에 맞게 옷을 입지 않으면, 타고난 아름다움을 다는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다소 빈약한 체질로 옷에 신경을 써 세심하게 꾸며 입으면 오히려 그 단점이 개성미로 바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상이 유행되는 원인은 그 시대면 시대, 그 철이면 철에 따른 사람들의 기호(嗜好)나 시대감각에서 오는 것인 줄로 알지만, 이 감각이나 기호라는 것이, 결국은 육체의, 아니 될 수만 있으면 혼의 개성미까지도 살리려는 깊은 미적(美的) 욕망에서 참신하게 솟는 것이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란 일반적인 유형미, 즉 세계 공통의 미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다. 미로의 비너스상을 미의 전형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미의 한 유형일 뿐 미는 구체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동양인의 미와 서양인의 미가 다르고 또 같은 미라도 클레오파트라의 미와 양귀비의 미는 같을 수는 없다.
여인의 육체에서 남의 눈을 가장 끄는 곳이 얼굴과 다리다. 다른 부분은 모두 옷으로 가리워졌는데 위와 아래에서 얼굴과 다리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얼굴의 결점은 화장으로 어느 정도 가릴 수도 있지만, 종아리만은 무슨 방법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여인을 볼 때 먼저 얼굴을 보고 얼굴에서도 눈을 보고, 그 다음은 곧장 다리로 내 눈은 내려온다. 얼굴을 본 후에 곧장 다리께로 내려오지 않고 여인의 가슴이나 몸뚱이 부근에서 배회하는 남자의 눈은 점잖지 못하다.
일본 무와 같이, 좀 과장하면 하이웨이와도 같이 쭉 곧은 여인의 다리를 보면 순수하게 상쾌하다. 그래서 여자의 육체, 그 많은 부분 중에서도 특별히 각선미라는 말이 생겼을 줄로 안다.
인간에게는 모두 그런 요소가 있지만, 여자에게는 아마도 흡인(吸引) 본능의 욕망이 좀 더 강하게 잠재해 있는 것 같다. 여자의 각선미는 얼굴 못지않게 이 방면에 선용되는 신선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이 무기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전반적으로 각선미가 좋은 서양 아가씨들의 치마가, 개방의 20세기를 맞아 자꾸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들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여 정신의 궁핍을 육체적인 면에서 메워보려는 뜻으로 해석하여 줄 수도 있다.
해방 전 우리나라의 한 작가는 무희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 “여자의 옷은 문명해질수록 원시로 돌아간다.”고 이미 오늘을 예언하여든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시비야 어떻든 흡인 본능과 개방의 필요에 따라 미니스커트가 출현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치마는 각선미 좋은 사양 여인들에게는 어울리기는 어울린다.
그러나 선천적인 체질이나 생활 관습 때문에 다리의 선이 늘여놓은 S자 마냥 꾸부러진 여인들이 많은 동양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에까지 이 미니의 바람이 대대적으로 유행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못마땅한 일이다. 추운 한겨울에 영하 15도의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거리 바닥에서, 미니스커트를 허벅지까지 치켜올리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아가씨를 바라보노라면 참말이지 동포애를 가지고 슬퍼진다. 한겨울에도 따스한 자동차로 어디든지 따스한 실내까지 옮겨지는 부요(富饒)한 외국과는 전혀 사정이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이유로 한겨울에도 치마를 무용복 차림으로 치켜올려 입어야 하는가?
미니스커트는 지나친 유행은 우행이로되, 서양의 의자 생활에는 그래도 맞는 양식이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온돌방에 주저앉으려니 드러나는 허벅지를 방석으로 가릴 수밖에 없는 이상한 습성이 생겨나고, 머리의 수건을 방안에서는 무릎으로 둘러쓰는 희극이 벌어지게 된다.
로마시에는 지하철이 없다고 한다.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지하에 묻힌 고대의 유산들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지하 철도가 없는 불편을 온 시민이 참고 견딘단다. 이러한 행동에서 곧 그 민족의 지성과 주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민족의 지성과 개성을 거창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유행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알맞게, 분별 있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 사람의 지성과 주체성과 무관하지는 않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여인 / 윤태림 (0) | 2018.07.05 |
---|---|
수필강좌 내일 개걍 (0) | 2018.07.04 |
[좋은수필]칠월에 만난 풍경 / 윤영 (0) | 2018.07.03 |
[좋은수필]하늘이 좋아서 떠나는 사람 / 박순녀 (0) | 2018.07.02 |
[좋은수필]시간의 빈터에서 / 김열규 (0) | 2018.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