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 이필선
거실에 놓인 테이블에 틈이 생겼다. 항시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틈은 옹이와 그 둘레를 싸고도는 결에 따라 시나브로 커졌다가 작아졌다 한다. 옹이는 옹이대로 결은 결대로 서로 밀어낸 탓이다.
테이블을 사들였을 때 이미 세월의 향이 녹아 있어 더는 트집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오랜 시간의 더께로 말미암아 더 이상 트지 않는다고도 했다. 묵힌 나무속에 고스란히 스며든 산바람 강바람이 모든 것을 포용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테이블은 삐걱대며 트집을 했다.
색깔이 분명했던 처녀 때와 달리 결혼 후에는 무채식의 말들이 가슴 속에 쌓여갔다. 어느 것 하나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결혼 전 남편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서로 탓만 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 불만은 옹이가 되어 자꾸 트집을 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도드라지면 안 되는 옹이였다. 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는 노력보다 화가 날 때마다 자포자기가 더 빨랐다. 포기의 횟수만큼 옹이는 커졌다.
그러던 중, 남편은 직장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 후부터 퇴근 시간은 조직화라는 명분에 취해 늘 휘청댔다. 서슬 퍼런 대기업의 조직인 구사대가 있네 마네 등의 흉흉한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소문은 공포가 되어 귀가를 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대기업의 칼자루는 언론의 자유도 조절할 수 있던 어두운 시기였다. 텔레비전 뉴스는 연일 붉은 머리띠를 맨 노조원들이 연행됐다는 보도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남편을 보고 있기가 불안했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터이니만큼 직장의 구성원으로만 행동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분별없는 행동으로 수렁인 줄 모르고 꿀 병으로 점점 기어들어 가는 개미같이 엇물결을 타고 흘러가게 될까 봐 걱정됐다. 나의 염려가 더해질수록 남편은 자신을 스스로 무장했다. 내 말이 귀에 닿을 리 만무했다. 틈은 점점 커졌다.
남편은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만 나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어리석은 판단이라며 일깨워주려 애썼다. 도무지 한쪽 눈과 귀가 탈 난 사람의 꼴만 같았다. 가정을 택하든지 노조를 택하든지 하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불현 듯 말문을 닫아 버리기도 예사였다. 밤새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빵빵하게 채워 옹이 두께를 더했다. 이튿날이면 여간해선 맑은 소리가 나오지 않고 볼멘소리만 훅훅 나왔다.
흔들림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미워하기에도 탓을 하기에도 지쳐갔다. 가끔은 출근하는 남편이 열고 간 현관문을 붙잡고 멍하게 서 있기도 했다. 다독거려 보내지 못해 드는 안타까운 마음마저도 휑한 바람을 만들어 결을 밀어냈다. 삭막해져 있을 남편의 가슴에 온기를 넣어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낮에 먹었던 마음과 달리 퇴근 때면 또 마음 문에 빗장을 채웠다. 그럴수록 남편을 미워하는 내가 더 괴로워졌다.
그럴 즈음이었다. 아이가 느닷없이 장 경련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남편은 일을 하다 말고 땀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은 채 병원으로 달려왔다. 남편을 보자 고립무원처럼 느꼈던 두려움과 외로움이 해제되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아이가 누운 병실에서 나온 남편은 그동안 거리를 뒀던 틈을 메우기라도 할 듯이 망연히 나를 바라만 보다가 직장으로 돌아갔다.
병실 복도 벽에 기대서서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남편이 내게 그리 닦달 받을 만큼 저지른 잘못이 대체 무엇일까 하고, 이유는 내게 있었다. 남편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옹이를 만들어 결에서 멀어지려 했다. 원망과 탓으로 쌓았던 마음의 돌기를 풀기 시작했다. 숨 쉴 틈 없이 남편을 옥죄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남편의 일상은 이른 새벽에 나가 달이 훤한 밤중이 돼야 들어왔다. 야근을 할 때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출근해 올빼미 눈으로 근무를 끝내고 남들이 출근할 시간에 퇴근했다. 유월 죽순 솟아오르듯 산업경기가 쭉쭉 뻗어 나갈 때는 일요일도 철야근무를 하느라 쉬지 못했다.
집에서 나서면 근 열네 시간만의 귀가를 했다. 그 덕에 회사를 부강하게 만든 노동력의 대가를 더 높여 달라고, 별을 보도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하는 근로자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달라고, 몇 날 며칠을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노조원 속에 남편이 있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주먹밥을 해 공장 담 너머로 넘겨주고 물통을 던져주는 다른 아내들에게 비하면 나는 무심하고도 냉정했다. 당시의 사회적분위기는 서민들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시민들의 옹호 아래노동자들이 드높이 주먹을 흔들던 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곰곰 생각해 보니 감정과 이성의 온‧습도가 달랐다. 각자의 개성이 다른 만큼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남편에게 탓만 했다. 뒤늦게나마 남편을 보듬어 안기로 했다. 내행동이 순해지자 남편의 퇴근이 빨라졌다. 밥상 앞에 앉는 횟수가 늘어나고 밥알을 세는 횟수보다 가정사를 나누며 숨을 고르는 시간과 함께 틈이 좁혀져 갔다. 그때부터 남은 틈은 그대로 안고 각자의 길을 만들어갔다. 다져진 옹이는 옹이대로, 옹이를 둘러싸고 도는 결은 결대로, 제 나름의 멋을 부려가며 더 뚜렷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도무지 쓸모없을 것 같은 틈은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됐다. 서로를 숨 쉬게 하는 통로였다. 둘이 쉬는 들숨 날숨에 따라 틈도 덩달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온‧습 조절을 거부하는 합성수지 가구와 달리 나무 테이블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제 몸 안으로 다 받아들인다. 흐리거나 배 내려 습한 날에는 머금은 습기로 틈을 채워 고운 색을 지니다가 갠 날이 되면 서서히 틈을 넓혀서 바람 숨을 쉬게해 준다.
틈은 옹이와 결이 만들어 낸 상처의 골이다. 나와 남편이 만든 흔적이다. 옹이와 결이 팽팽히 맞서며 아픔을 거쳐 제 몸에 처연히 녹아든 것이다. 삶에 지쳐 회오리처럼 외돌아져 버린 옹이와 덩달아 뒤돌아서기를 반복한 결이 만든 결과였다.
이제 틈은 지난 세월을 보듬듯 간격을 조절하며 더는 나무 테이블을 뒤틀리지 않게 한 것이다. 마음 모아 손잡은 우리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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