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힘을 빼요 / 조일희
내가 몸치라는 걸 중학교 무용 시간에 처음 알았다. 얄팍한 몸 어디에 굵은 철심이라도 박혔는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임마저 한 박자씩 느렸다. 내가 손을 올릴라 치면 친구들은 벌써 내렸다. 나와 운동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규칙적으로 피던 붉은 꽃이 어느 날부터 피지 않았다. 꽃이 지니 몸도 시들부들해졌다. 낡은 기계처럼 결삭은 몸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르몬제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운동 처방을 같이 내려줬다. 오랜 세월 운동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가 고심 끝에 택한 게 수영이다. 그나마 다른 운동에 비해 움직임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몸치가 물에 뜨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는가. 그중에서도 물에 대한 공포심이 제일 넘기 어려운 걸림돌이었다. 대 여섯 살 때, 용진 다리 밑 맴돌이에 빠져 죽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물귀신처럼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물 위로 뜨려는 부력과 가라앉으려는 중력 사이에서 몸은 가드락댈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킥 판을 움켜쥔 채 이 년여를 버텼다. 어느 날, 아차 실수로 생명줄 같은 판을 놓쳤다. 살겠다는 본능은 나를 한 마리 물방개로 만들었다. 넉더듬이하듯 팔다리를 돌리다 보니 어느새 물 위로 붕 떠올랐다. 살겠다고 붙잡은 판이 도리어 몸을 막은 방해물이었을 줄이야. 진즉에 놓았어야 했다. 하기야 제때 놓아야 하는 게 어찌 판때기뿐이랴.
몸에서 힘을 빼는 일은 수영의 알파와 오메가다. 수영 입문자라면 누구라도 넘어야 하는 필수 관문이다. 발에 물을 적신 지 여러 해건만 "어머니, 힘을 빼요. 힘~~" 소리를 아직도 듣는다. 그만큼 힘 빼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다.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기면 맞춤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온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힘을 빼야만 맛볼 수 있는 몸의 환희이다.
누군가 "어떻게 힘을 빼요"라고 물어온다면 적절한 답을 해 줄 수 없다. '두려운 마음을 버렸을 때 가능하다, 마음을 비워야 몸도 가벼워진다.'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힘 빼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몸으로 체득해야 아는 몸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빼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몸은 더욱 깊숙이 가라앉는다. 욕심의 무게가 더해져 그럴 터이다.
몸 에서 힘을 빼는 일은 시간이 답이다. 뻣뻣함의 대명사인 나조차 시간이 지나자 낭창낭창 해졌으니 말이다. 정작 몸에서 힘을 빼는 일보다 마음의 힘 빼기가 더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세월이 흐른다고 어디 저절로 되는 일인가. 집착과 탐욕이란 두억시니가 나약한 마음을 무시로 흔들고, 비웠나 싶으면 다시 보각거리는 게 욕심의 속성 아닌가.
일전에 읽은 법정 스님의 글 '무소유'가 떠오른다. 청백한 스님은 거처에서 기르던 난과 얽힌 일화에서 당신의 지독한 집착을 깨닫고 깊이 반성한다. 이후 하루 한 가지씩 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고매한 인품의 스님은 청빈한 마음조차 단속하는데, 저속한 나는 어떠한가. 보면 갖고 싶고 가지면 더 취(取)하고 싶은 탐심의 사슬에 묶여있지 않은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일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이자 몸을 지키는 수신(守身)이다. 요즘 힘 빼기를 잘 못해 몸도, 삶도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망의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 쪽이 싸해온다. 정도의 차이일 뿐, 저들과 나의 욕망이 뭐가 다른가 싶어서다.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 올려놓는다.
책상 앞에 있는 내게 가늠자를 대본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사심,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공명심이 얕은 재주를 앞선다. 어려운 낱말을 써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고, 부끄러운 과거사를 은근슬쩍 뒤로 감추고 미화시킨다. 결국, 글은 자성을 잃어버린 나침반이 되어 주제를 잃고 헤맨다. 알맹이 없는 글은 떠죽거린 꼴만 들키고 만 셈이다. 마음에서 욕심과 욕망을 빼는 것, 나의 영원한 숙제이다.
힘을 빼고 한 마리 물개처럼 유유히 물을 가른다. 신입회원이 부러운 듯 물어온다 "어떻게 힘을 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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