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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돌탑을 쌓으며 / 김갑주

돌탑을 쌓으며 / 김갑주


 

 

 

퇴직한 지 3년째, 이제 머리 위에는 새하얀 눈꽃도 내렸다. 뒤돌아보니 순간인 듯도 하고 오랜 기간이란 생각도 든다. 소일거리라도 있어야 하겠지만 건강도 챙겨야 할 시기이다. 예전같이 구기운동은 무릎부상 위험으로 이제는 즐길 수도 없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 대신 시간만 나면 죄다 벗으로 삼을 자연이 있다. 인근에는 영남알프스라는 1천 미터 이상 되는 이름난 산들이 많아 언제든 산행하기 좋은 여건 속에 사는 게 나에겐 축복이며 희망이다.

울주군에 속한 간월, 신불, 고헌, 가지, 영축산, 밀양시에 접한 천황, 제약산 등 7봉이 청도군의 운문산과 함께 8개나 된다.

그래서 과다체중이던 몸을 절식과 함께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2~3일마다 8개 산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걸었다.

그러나 산행을 하다 보니 가까운 1곳을 정하여 자주 즐길 수 있는 데는 단연 영축산이었다. 통도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완만한 하중층부는 노송으로, 경사진 상층부는 활엽수로 피톤치드의 산 기운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

경부고속국도변 통도환타지아 인근 3개 마을 어디서든 시원한 솔바람을 맞으며 올라갈 수 있고 오름길도 돌밭길, 임도, 인도 중간 지름길, 임도 좌측 계곡 중 택일하여 이용할 수가 있다.

체력 여건상 매일 갈 수는 없고 이틀에 한 번씩, 대신 경사가 심하지만 가장 짧은 직선코스인 계곡 오름길을 택하였다. 고통 없이 오른다면 오르는 게 아니듯이 힘들지만 땀도 많이 흘러 노폐물도 빼내고 비 온 뒤에는 푸른 숲과 몸을 섞어 청량한 물소리에 빠지면서 청정한 새소리에 숲이 울려 비발디의 사계가 따로 없다. 또한 들머리부터 풍경과 마음을 한 땀 묶어 기운 싱싱한 초록 한 자락 얻어 입고 빈 가슴에 차오르는 갈맷빛 능선을 따라 오를 수 있어 좋다.

하여 삼림욕을 통해 병원균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인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뤄진다고 하니 오래 머물수록 보약이 될 수밖에 없다. 산 기운과 나의 탁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대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를 산중에 머물렀다. 바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쉬는 시간이며, 녹색장원인 자연 속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

어느 날 8부 능선 막다른 임도 변에서 한참 동안 작은 바위를 앉을깨 삼아 무심코 쉬고 있는 바로 옆에 내 키만 한 돌탑 하나가 안쓰럽게 무너져 있었다. 나중 바로 옆 산장 주인으로부터 들은즉, 어느 비구니 스님이 쌓은 뒤 전라도로 떠났다고 한다. 가만히 시간만 보낼 수 없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무너진 부분을 싹 걷어내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래쪽에 모난 큰 돌을 괴고 당초 원뿔 형태로 위쪽으로는 작은 돌을 얹었다. 치유를 한 셈이다. 너와 나의 산속에서 귀도 눈도 닫은 돌을 흔들어 깨운 일이었다.

주변은 대체로 돌밭이고 임도엔 널브러진 돌이 있어 약수터에 깐깐하고 맛있는 단물 한 병 담아와 나라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위한답시고 나도 한 번 쌓아보자는 설렘이 일고 호기심도 생겼다. 길바닥에 발길에 채는 움직이는 돌을 활용하면 될 테니까.

처음엔 10개를 목표로 하여 안정감을 갖도록 원뿔형으로 잡되 기초가 든든하도록 밑에는 큰 돌, 위에는 작은 돌을 얹는 위주로 둥근 막돌은 채움으로 이용하였다. 어디 모두가 내 맘에만 맞는 돌이 있겠는가. 이끼 낀 돌은 미끄러지기 쉬우므로 안쪽으로 기울게 놓고, 집요한 침묵만큼 아랫돌이 흔들리지 않으면 윗돌을 놓았다. 또 부족하면 몇 십 미터라도 필요한 돌을 주어왔다. 손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변의 모든 돌을 동원하였다.

생명체라면 발에 밟히거나 땅에 묻히는 것보다 청명한 하늘 높이 쌓이는 게 나을 것이다. 침묵 속에 땀 내림 방지용 머리띠를 매고 쌓다보니 지나는 산객들 10명 중 2~3명은 관심으로 말을 건다. “공덕을 쌓고 있네요. 나이만큼 쌓으세요. 마음의 눈요기 감으로 보기 좋네요. 심신수양을 하네요.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겠네요. TV에 나올 만치 많이 쌓아보세요.”라고. 그렇다 산행하는 지친 산객이 잠깐이나마 눈길을 줄 수 있다면 내 마음도 뿌듯하고 보람된 일을 하는 거 같아 자꾸 쌓고 싶은 힘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쉴 틈 없이 몰려오던 스트레스와 상념은 날아가고 고된 줄도 모른다. 눈에는 돌만 보인다. 일종의 집념이고 인내의 산물이다. 또한 마음을 다스리며 내가 나를 찾는 정화의 시간이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삶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점심은 막걸리 한 병, 커피 한 잔, 2~3, 과일 1~2, 초콜릿 1~2개 등을 사이사이에 나눠 먹으면 그만이다.

쌓다 보니 돌이 많은 곳은 키가 150~160cm, 그 외는 140~150cm가 된다. 생김새는 가분수, 장고, 일자, S라인 등 다양하다.

노하우가 생겨 처음엔 1개 쌓는데 1시간이 훨씬 넘었으나 두 달 째부터는 1시간에 좀 못 미쳤다. 집중의 효과이다. 가슴과 뒷등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유동적인 맘, 혼탁해진 감각을 씻어낸 기분이다. 낙엽 떨어진 메마른 가지를 보면 한 쉼표 머물다가 내려놓는 법을 알 듯 마음이 지혜로워지는 시간이다. 지난날에 대한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성찰이며 참회이며 업장소멸이랄까. 1개씩 늘어날수록 설렘과 쾌감의 연속이다. 내 자식 같다. 또 다른 흐뭇함을 느낀다. 자연속의 서정이다.

담장이나 옹벽처럼 정교함은 없지만 석회암 동굴의 울퉁불퉁한 석주를 연상케 한다. 혼이 깃든 멋이 된다. 돌탑과 돌탑은 자연과의 배경이 되어준다.

처음엔 1회에 1개씩을 계획했으나 갈수록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2~3개 정도 쌓는다. 2달 가까이 쌓으니 1차적으로 어느덧 1곳에 쌓을 공간이 없이 60개나 꽉 들어찼다.

 

완만한 임도를 택한 귀가 길은 오를 때와는 달리 가슴에서 돌을 내린, 2비운 몸으로 나풀나풀 더없이 가뿐하다.

촐촐한 배를 채운 저녁밥은 조금 당겨서 4~5시경으로 빈속을 채운 후 샤워한다. 어깨와 팔, 장딴지와 허리가 우리하다. 때로는 코에서 피가 묻어나고 매일 밤잠은 코골이가 된다.

갈 때마다 잘 있는지 돌봐야 할 사람 같다. 누군가에 의해 허물어진 탑이 몇 군데 있어 다시금 올리기도 하였다. 2차적으로 산객들이 볼 수 있는 등산로의 쉼터 곁에 발길에 방해되지 않도록 마음을 담아 더 쌓아갔다. 물론 군데군데 울퉁불퉁한 바닥은 문질러 고르고 지참한 비닐봉투에 주변의 쓰리게는 주워야 했다.

 

/누가 첨 땅바닥에 밑돌 몇 점 앉혔을까/비바람이 가꾼 이끼 연이 오간 돌무더기/믿음의 더운 피 돌아 키가 쑥쑥 크고 있다//촘촘히 박힌 돌탑 키 재기를 하고 있다/산릉의 열린 이편 저들의 쉼터인 양/촉촉한 콩나물처럼 비비면서 우뚝 선/

 

고요한 도랑 산속에 내가 서있다. 내 가슴속엔 정겨운 돌탑이 산다. 살아간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풍경에 빠져들어 설렘 속에 자신감이 되살아난다. 몇 개가 될지언정 헛된 삶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데까지 가보는 거다. 그 후엔 갈 때마다 잘 관리해주면 될 것이다.

등산로가 생명력을 지닌 돌탑으로 줄지어 명물로의 상징성을 가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행복과 의문 속에 나중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보람을 갖고 오늘도 생생한 심신으로 집을 나선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지나 훗날 목 갈지언정 뇌리의 막장에서 지난 산행 길의 추억을 반추할 거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