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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수목원의 아이들 / 곽흥렬

수목원의 아이들 / 곽흥렬

 

 

 

따사로운 기운이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봄이다!” 하고 나직이 읊조려 본다. 얼마나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고 기다려 온 시절이던가. 불과 한 주 전까지만 해도 한 자나 되는 폭설에 놀라 오던 봄이 도로 달아나 버렸나 싶었다. 오늘 아침, 창가에 내리는 아지랑이가 마음을 마당으로 불러낸다. 겨우내 묵어서 찌든 일상의 먼지도 털어내고 무료한 시간도 달랠 겸 대구수목원을 찾았다. 오후의 금빛 햇살을 받은 꽃과 나무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다시 맞은 희망의 계절을 환호한다. 올망졸망 늘어선 꽃나무들에게 하나하나 차례로 눈맞춤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들도 마치 기다리고라도 있었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알은체를 해 온다. 그렇게 오랜만의 한유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도교사의 인솔 아래 여기저기서 노랑병아리 떼가 우르르 모여들었다. 조용하던 수목원이 갑자기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왁자그르르하다.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놀이에 정신이 빠졌다.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그 광경에 유심히 눈길을 주고 있노라니 어째 마음 한구석이 거북살스러워 온다. 숨바꼭질이며 보물찾기 따위의 놀이를 위해서라면 굳이 수목원까지 와야 할 이유가 뭐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런 교육 활동들은 그저 근처의 공터나 쌈지공원 같은 데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아닌가.

아이들은 밀물처럼 몰려와 주변을 한바탕 요란스럽게 흔들어 놓고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수목원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굳이 적잖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수목원을 만들고 가꾸는 목적이 무엇일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꽃과 나무의 생태를 알게 함으로써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한 체험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거기다 생명 존중의 심성을 갖게 되는 것은 덤으로 길러지는 무형의 수확일 터이다.

한참 동안 장의자에 앉아 불편해진 심사를 추스르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손에 손에 스케치북을 든 한 무리의 병아리들이 다시 나타났다. 선생님이 따스한 사랑 담긴 목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 얘들아, 우리 지금부터 스케치북에 내가 좋아하는 꽃나무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다 자기 생각을 한번 달아 보자.”

인솔 교사의 유도에 아이들이 일제히 !” 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 대답의 함성이 부푼 풍선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잠시 후, 아이들은 팝콘 튀듯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는 제각기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꽃을 그리는 아이도 있고 나무를 그리는 아이도 있다. 개중엔 두 가지 다 담는 아이도 눈에 뜨인다. 식물 한 번 쳐다보고 도화지 한 번 바라보고 식물 한 번 쳐다보고 도화지 한 번 바라보고, 그리기에 정신을 쏟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고사리손으로 크레파스를 옴켜쥐고 삐뚤빼뚤 열심히 도화지의 여백을 채워 나가는 모습에 천진난만함이 묻어난다.

아까의 광경과 지금의 광경을 견주어 보면서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목표는 같지만 얻어가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지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저 교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를 뿐이다. 지혜로운 교사냐 그렇지 못한 교사냐에 따라 처음엔 똑같은 바탕의 아이들일지라도 결과로 나타나는 심성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탈무드의 한 구절에 새삼 고갯방아가 찧어진다. 백지처럼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영혼들을 바람직스러운 길로 이끌어 줄 책임은 순전히 어른인 교사에게 지워진 몫이 아닐까. 가르친다고 해서 다 같이 가르치는 것은 아님을 수목원 나들이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요즈음도 이따금씩 수목원을 찾는 날이면 그 때의 풍경이 선연히 되살아나곤 한다. 그러면서 그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속 깊숙이에 남아 결결이 내 가르침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