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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위층 여자 / 최장순

위층 여자 / 최장순


 

 

위층 여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그 여자의 레퍼토리는 몇 가지에 불과하다.

가끔은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아리아 밤의 여왕을 부르기도 한다. 조수미가 불러서 익숙해진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나는 더 괴롭다. 음이 올라가는 대목에서 ,괴성을 질러대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이사를 온 것은 지난 해 겨울이었다. 늦게 시작한 글쟁이지만 마음 다져 먹고 책상 앞에 앉으면 몇 줄도 쓰지 못하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글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은 순전히 위층 여자 때문인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노래를 부르는 일로 이웃 간에 이러니저러니 따진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그렇다고 무작정 참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아지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청년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만나면 조용히 타이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남자와 마주쳤다. 60대 후반의 중후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들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먹했지만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집안에 가수 지망생 있으세요?”

아뇨.”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13층에 멈추었고 나는 내려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밤낮으로 불러대는 그 노랫소리, 이제 더 이상 못 참아요. 자제를 하든지 방음시설을 하든지 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했어야 했다.

영 태도가 맘에 안 들어.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으면 다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러게요. 그 집 남자 좀 이상해요. 인사를 해도 고개를 돌린다니까요.”

아내도 내 말을 거들었다.

창밖을 보니 따뜻한 햇살에 봄이 온 것을 알았다. 쓰던 원고를 마무리하려고 서재로 들어가는데 또다시 아리아 밤의 여왕이 들려왔다. 그 여자의 노래 중에서도 제일 듣기 싫은 노래다. 나도 모르게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깊은 숨을 내 쉬며 감정을 눌렀다. ‘먼저 열 받는 쪽이 지게 마련이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때 경비원이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알고 계세요?”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위층 남자보다 대하기 쉬운 상대라고 여겼을까, 다분히 저돌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손을 멈춘 경비원이

,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니, 14층의 노래 부르는 가수 지망생 말이에요. 좀 참아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 그 할머니 말씀이군요.”

할머니? 아니, 할머니라뇨?”

나는 뜻밖의 말에 놀랐다. 위층 부부는 서울에서 이사를 왔는데,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뒷바라지를 하는 할아버지가 산다고 했다. 아들 내외와 같이 살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공기 좋은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노래는 치매환자가 보이는 이상행동이었던 것이다.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설명을 듣고 이해는 되었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서울에서는 시끄러우면 안 되고 여기서는 그래도 된답디까?”

경비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지없이 초라해 보였다. 곧 이순의 나이가 아닌가. 내 모습 위로 문득 둘째 형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형님은 지난해 이맘때 돌아가셨다. 겨우 70의 나이로. 은행원으로 정년을 마친 형님은 죽기 1년 전부터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더니 급기야 치매 증상을 보였다.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 분노의 투쟁을 하는 듯 보였다. 이놈, 저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집안에 있는 거울이며 TV모니터, 액자 같은 것은 모조리 신문지로 발라 놓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눈치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결국 요양원으로 가야 했다. 두 군데의 요양원을 옮겨 다니면서 건강은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다. 개나리꽃이 활짝 피던 어느 봄날, 끝내 고통의 사슬을 끊었다. 울컥,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어두웠던 표정의 위층 남자를 떠올려 보았다. 주야로 어린애 다루듯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일은, 노인으로서는 힘에 벅찼을 것이다.

여보, 우리 그 노래 소리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맙시다.”

아내가 말했다. 그렇다. 내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할머니의 노래는 살아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젠 할머니의 노래 소리가 커질 때마다 기타 반주로 화답을 하기로 했다.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게 내 취미가 아니었던가.

어제는 위층이 한참 동안이나 조용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내 형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할머니 노래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 기타 반주 소리도 어둠 속으로 힘없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