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궁둥이에 반하다 / 윤경화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앞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다. 그녀는 내 사고의 틀을 확 뒤집어 놓을 심산인지 안반짝만 한 궁둥이부터 밀어 넣는다. 허여멀건한 궁둥이가 마룻바닥에 그득하다. 올해는 윤삼월이 있어 한 번 더 만나주는 것이 덤인 양 생색을 내는 듯하다.
본래 세상사 이치가 아쉬운 쪽이 기를 죽이고 들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그녀와 나는 밤을 새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추상화 감상하듯이 할 참이다.
나는 남편이 잠들면 한 달에 한 번쯤 외도를 한다. 잠옷 차림으로 누구를 기다리다 맞아들여 허물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그 은밀한 맛이 매력적이다. 생활 속에 이처럼 발칙한 계획이 가끔 들어 있다는 것은 늘어진 일상에 탄력을 준다.
그녀는 맑은 보름이면 빠짐없이 온다. 한 달 중 가장 너그러운 모습을 하고서 스스럼없이 들어선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넉넉함의 정수를 보여주듯이 그녀의 살점이 부서지는 풍경도 환상적이다.
풋내가 나는 초승달일 때는 막 피기 시작하는 불두화의 빛깔을 닮은 구석도 있다. 달이 차고 꽃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풍기는 매력이 어찌 사람의 것과 견줄 수 있으랴. 그러니 세상의 이치로 꽉 차오른 그녈 늘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에는 좀 특별한 모습이다. 세간에서는 이런 그녀를 '슈퍼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별과 가까워져 더 밝고 크다고 하지만 나는 급격한 변화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그녀의 변한 모습이 부은 것 같기도 하여 낯이 설다. 밝기는 해도 본래의 맑음을 잃은 듯도 하다.
단지 거리 변화 때문에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보일 뿐이라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왠지 속임수 같다. 최근 들어 종종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스스로 내 모습을 담아보면서 느낀 것인데 사진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다. 피사체는 그대로인데 거리나 위치에 따라 봐줄 만하다가도 커진 그녀처럼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세상의 잣대와 어긋날 때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며칠에 한 번씩 렌즈에 얼굴을 들이대다 터득한 것이 있다. 펑퍼짐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조금 먼 거리에서 셔터를 누르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재미를 붙인 나는 여럿이 함께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도 까치발을 하고 뒷줄에 선다.
그런 내 속을 아는 그녀는 다문 입을 삐죽이 내밀고는 '생긴 대로 살지.' 하는 투다. 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궁둥이에 살이 더 붙었구먼' 하는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는 이참에 최근의 꼬인 심사를 털어놓을 생각이다.
내가 큰 달이 된 지는 꽤 되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조금씩 덩치가 늘어날 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로 가면 꽤 긴 시간 보름에 만난 그녀와 같은 모습으로 지낼 것이 뻔하다. 이럴 때는 혼자 살면 부담이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피해 혼자 살아갈 재주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뿐인가. 요즘 사람들의 소통 방식 또한 느낌보다는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 화장한 얼굴을 보면 하나하나가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있을 때는 '생각'이 밖으로 나와 걸어 다니는 노천 전시회장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끌림이나 여운은 물론 사람이 바뀌어도 새로운 느낌이 그리 들지 않는다. 따라가기는 있어도 나만의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 몰래 만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몸에서 향기가 나고 매번 봐도 물리지 않고 매료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 둘일 수 없는 고유성을 이 시대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시원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보름달의 고유성을 나는 사랑한다. 그녀가 설레게 하듯 이 고유한 것들은 그 본래의 모습만으로도 세상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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