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어색한 미소 / 양미숙

어색한 미소 / 양미숙

 

 

 

한 달이 넘도록 그녀가 오지 않는다. 가끔 아주 가끔 만나던 분은 그녀가 늘 앉았던 자리에 지금 혼자 앉아 있는데, 왜 혼자일까.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자차를 참 좋아하시나 봐요.”

그녀는 몇 달 째 같은 시간에 나타나 같은 음료만 주문하고 한 시간쯤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곤 했다. 그녀의 대답은 커피는 마실 수가 없어서 유자차만 먹는단다. 어느 말, 계산을 하고 돌아서던 여인이 털썩 주저앉는 듯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내색을 감추고 얼른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 상처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왜 쓰러졌는지 물었다. 매장에서 다른 응급한 상황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뇌경색으로 온몸에 마비가 와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히 했다. 마음대로 웃어지지가 않는다는 그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은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관리를 했다며 본인에게 뇌경색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단다. 건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그녀. 성인병이 오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말을 들으니 그녀가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한 미소는 그것 때문이었다. 마비가 왔다가 아직 풀리지 않은 근육이 얼굴 어딘가에 있던 것이다. 가끔 다리의 근육이 풀려 어지에서든 주저앉게 된다며, 놀랬을 나를 위로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이만큼 걸을 수 있고 웃을 수도 있노라고 말하며 짓는 어색한 미소가 아름답다. 카페에 차 한잔 마시러 나오는 말이 운동도 하고 사람 사는 것도 볼 수 있는 하루 일과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녀는 날마다 웃는 얼굴이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책을 권했다. 내가 책을 전하면 그녀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몇 번을 다시 읽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돌려준다. 좋아하는 부분을 밑줄도 그었다면서, 글을 읽다 보니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그녀와 난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았다. 조금씩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녀 덕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떤 상황에도 늘 감사하려 노력했다. 마음 한편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감사하게 되는 일이 늘어갔다. 모든 일에 나도 덤으로 얻은 것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웃을 일이 더 많이 생겼다. 주위 사람들은 늘 웃는 나에게 웃음 바이러스가 있나 보다고 했다. 웃는 표정으로 대해 주니 자신들도 웃게 된다고 했다. 나도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많고 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마음에 폭풍이 일었다가 그것을 잠재우려 하면 더 큰 스트레스로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아무 의미 없이 웃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오랫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던 그녀가 한 달여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 며칠은 겨울이라서 운동을 멈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가끔 함께 오던 친구는 혼자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오늘은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다. 그녀의 친구가 힘없는 눈빛으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 혼자 있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지만 기다려 보기로 한다. 불길한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든다.

그녀는 불편한 몸이지만 나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전했다. 나를 보며 누군가가 또 행복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 있는 일이다. 그녀는 내게 선물 같은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