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春夢) / 문선자
쿵쿵, 심장이 뛴다. 얼굴이 붉어지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핀다.
간밤에 소년의 꿈을 꾸었다. 숨겨둔 꿈에 편지 한 장이 날개를 달아 날아오른다. 꿈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으리라. 어쩌면 그날을 위해 꿈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새벽이 열리고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꿈속 장면이 지워지지 않아 멀뚱히 앉아 있다. 삐걱거리는 가슴을 열고 꿈속 자락이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꿈 자락을 햇살에 말리다 말고 슬며시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득한 길을 걸어 까마득히 잊었던 옛길을 걷는다. 팽팽하게 담긴 청춘의 고개 너머로 봄날의 기억이 나폴 댄다.
추억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짧게 피었다 내려앉는다. 소란한 시절 속의 그리움들…. 잊히지 않을 것처럼 뿌리를 내리더니 깊어질 만큼 깊어진 다음에야 홀연히 그리움에 젖어 든다. 많은 일이 그렇게 아련해져 간다. 무엇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건 봄이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나이를 잊은 영원한 소년, 소녀다. 비록 서로 다른 방향의 열차를 타고 도달한 종점이지만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다. 진실한 마음,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막아 낼 수 있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잃어버린 젊음을 만나곤 한다. 삶에도 볕 바른 곳과 그늘진 곳이 있다. 헤어질 수밖에, 어찌할 수 없었던 나는 항상 그 가장자리에서 지키고 서 있다. 생각 줍기로 흔들림이 있다 해도 창밖의 의젓한 나무처럼 언제나 제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한차례 거센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얼룩진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어 볕 바른 곳에 내어둔다. 빛을 밟고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의 유연함을 배우며 쉬엄쉬엄 길을 간다.
꿈이 나폴 대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신작로를 자전거로 두 시간 동안 달려오는 소년이 있었다. 보름달보다 맑고 고운 눈결과 마음의 빛깔, 가벼운 미소로 설렘을 던지며 나의 심장을 차고 달리며 오곤 했다. 어느 날 자전거에서 내린 소년은 누런 봉투를 수줍은 듯 내 손에 건넸다. 손자병법이라는 책이었다. 여러 번 읽어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그 세계를 넘겨다보았고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순간, 돌담 구멍으로 파고든 햇살 한 줄기가 소년의 눈에 내리꽂혔다. 긴장감이 몸을 옥죄었다. 우리는 미래에 살짝 걸터앉아 약지를 맛 닿았다. 소년으로 인해 나는 점점 채워져 갔다.
소년은 K고교 학생회장이었고 나는 걸스카우트 단장이었다. 소년과 나는 스카우트 캠핑대회에서 만났다. 우리는 서로 진학문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도움 될 만한 책을 서로 선물했다. 한 살이 더 많았던 소년은 그해 S 대학에 입학했다. 하나 나는 희망했던 학교에 진학을 못했던 관계로 소식이 끊기고 만남은 끝이 났다. 인연이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좋은 추억들로 가득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것들도 많았다. 언젠가 서랍 속의 오래된 편지들을 하나둘 펼쳐 보았다. 작고 얇은 종이 속에 담긴 추억들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편지를 보는 날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아래에 마음을 걸어놓고 소식을 기다렸다. 바람은 가벼운 걸음을 재촉하며 우리의 가슴에 편지를 배달하느라 흥에 겨운 듯했다. 수줍음 속에서 미래를 속삭였던 모습이 떠올라 귓밥이 뜨거워졌고, 추억은 그대로 내 가슴에 살아 숨을 쉬곤 했다.
십 년, 이십 년,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고 몇 해가 흘렀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화면에 나온 얼굴이 낯익어 이름을 보니 그 소년이 맞았다. 반갑기도 하고 놀라워 자막으로 흐르는 글자를 자세히 훑었다. 소년은 티브이에 나올 만큼 성장하여 부장검사가 되어 있었다. 중년이 된 그의 머리칼은 변색 되어 있었다. 허연 머리칼의 주범은 세월이었지만 그는 멋지게 나이 들고 있었다. 사회적 성취를 쌓아서가 아니라 그 나이에 맞게 멋져 보였다. 깨달음과 감수성이 엿보였고 늙어 보이지도 어려 보이지도 않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침묵 속의 웃음을 던지며 여유로워 보였다. 오랫동안 숙성되어 푹 익은 김장 묵은지처럼 깊은 맛을 주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깨어있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야말로 나이 듦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꿈을 잃어버린 채 후회하는 삶보다는 더 늙기 전에 꿈의 날개를 펼쳐 평생 무언가를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점, 그것이 내 인생의 눈부신 오아시스다. 그동안 나는 능력과 양성, 조화가 주는 시간을 쏟아 부었고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살아왔다. 지금은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모든 일을 더듬어가며 내일의 길을 걷고 있다. 마음의 여백 사이로 그리움의 조각들이 휘날릴 때면 지워지지 않는 페달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푸른 어둠 속에 꼭꼭 숨은 그림자와 나를 비켜 새겨놓은 발자국을 찾아 생각을 더듬는다. 양손 가득 움켜쥔 채 온 우리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언 발끝만 응시한다. 아직 얼어붙지 않는 심장의 섣부른 기대가 어깨너머에서 눈치를 살핀다. 감정의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보지 못한 오랜 시간, 봄이면 어김없이 그 시간과 소년이 떠오르는 이유 또한 분명 익숙한 그리움이리라, 마음 곳곳을 떠다니는 감정의 편견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 마른 목구멍으로 쉼 없이 소년을 삼켜낸다. 어제도 오늘도 반복되는 악보 위의 도돌이표처럼, 부질없는 마음의 연가가 무겁게 흘러나온다. 나는 하염없이 멀어져 있는 그곳의 주소를 찾다가 길을 잃는다. 소년의 웃음소리를 따라….
이제는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나잇값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의 벽 앞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지만 맑은 그리움 하나 품고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소년과의 추억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어서 그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로 쓴다. 닫혀 있는 것들 사이에 편지를 써 조심스레 밀어 넣고 싶다. 글을 통하여 먼발치에서라도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리움으로 동여맨 아련한 기억들, 닫힌 것 사이에서 기다림은 고스란히 익어간다. 이 또한 춘몽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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