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말고삐를 든 남자 / 존 버거

말고삐를 든 남자 / 존 버거

 

 

 

그는 겨울이면 양복저고리 대신 스웨터 위에 코듀로이(골덴) 조끼를 입곤 했다. 실내외를 가릴 것 없이 머리엔 검은색의 작은 베레모를 마치 사냥모자처럼 눈이 덮이도록 바짝 앞으로 당겨썼다. 자신이 부리는 암말 비슈처럼 작고 단단한 체구였다.

비슈는 영원했다. 말이 늙어 일할 수 없게 되면 또 다른 어린 말을 사서 비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언젠가 고삐 하나를 내 앞에 들어 보인 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조용히 물어 왔다.

말을 보냈다는 뜻 아닌가요.

십오 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지요. 그가 말했다.

여전히 고삐를 들고 있었다. 그가 다소나마 과장된 모습을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말의 땀에서 나온 소금과 입의 거품들이 고삐 가죽에 하얗게 엉겨 있었다.

모든 것에 끝이 있지요. 마구간 문에 박힌 나무못에 고삐를 걸고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지난 달 파리에 갔을 때는 배낭에 그의 사진을 한 장 넣어 갔었다. 구겨지지 않도록, 후기산업사회에 대한 글이 실린 잡지 갈피에 조심스럽게 넣어 갔다.

사진에는 나와 테오필이 마치 낙농실처럼 휑하게 타일이 붙여진 그의 농가 부엌방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겨울이었고 베레모를 쓴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잔에 브랜디를 따르려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병이, 왼손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는 마개가 들려 있다.

내 머리가 세기 전이니까, 이미 십오 년도 더 전에 찍은 것이다. 일종의 미신으로 나는 그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니 그것은 기도의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해방을 비는 기도 말이다. 그러나 테오필은 결국 중환자실에서 육 주나 고통을 받고 나서야 저 세상으로 갔다.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의사를 찾기 힘든 지금, 나는 대체로 의사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필요한 고통의 연장으로 테오필이 제대로 된 죽음을 맞지 못했음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거기 모인 삼백여 명의 사람들은 악수할 때조차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좀 더 편히 갈 수 있었는데. 입 속으로 이 말을 삼키고들 있었다.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를 보기 위해 여러분은 여기 모였습니다. 사제가 늘어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인생에서는 어떤 것도 헛되지 않습니다. 관 주위로 촛불이 켜지고 사제는 이렇게 말했다.

홀연히 먼 기억 하나가 살아났다. 테오필과 이 여남은 마리의 젖소를 치고 있을 때였다. 라봉당스종() 젖소였다. 겨울 여섯 달 동안, 소들은 낮이나 밤이나 외양간에서 지냈다. 일 주일에 한 번 테오필은 빗질을 해주었고 필요한 경우엔 꼬리털을 잘라 주었다. 그 털은 매트리스를 채우기 위해 모아 두곤 했다.

착유기가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젖을 짰다. 잔의 솜씨가 빨랐다. 매일 저녁 외양간을 치우고 소들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 내 일이었다. 소가 물을 마실 때 목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홈통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수도관의 물을 연상케 한다. 똥을 모아 둔 무더기로 소똥을 실어 나른 후 그 외바퀴 수레를 씻었고, 필요할 때는 가축 사료 부대를 내오기도 했다.

사료들은 화재에 대비하여 본체에서 떨어져 지은 그르니에라 불리는 목조 건물에 보관했다. 그 계곡지방에서는 집집마다 그르니에를 한 채씩 가지고 있었다. 마치 갤리언 범선처럼 튼튼하게 지어졌는데 출입문이 두텁고 작아서 들어가려면 몸을 굽혀야 했다.

테오필의 그르니에 내부는 마치 그의 영혼과 같았다. 인내와 에너지, 그리고 기민함이 단정하게 충만된 저장고였다. 부대를 어깨에 진 다음 몸을 굽혀 좁은 입구를 빠져 나와 장화를 신은 오른발로 문을 차 닫는다. 그런 후 얼음이 언 계단을 내려온다. 한번은 잊고 문을 열어 둔 적이 있었는데, 테오필은 갖가지 있을 만한 적들의 명단을 내게 열거하면서 호되게 나무랐다. 여우, 들고양이, 족제비, , 두더지, 까마귀, 길 잃은 개, 심지어는 올빼미까지, 문을 열어두는 것은 안에 든 것을 망치라고 그 모든 놈들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외양간에는 부대에 들어 있던 사료를 채워 두는 나무 궤가 벽 쪽으로 놓여 있었다. 테오필과 잔은 매일 밤 젖 짜는 동안 소들이 먹도록 그 궤에서 들통으로 사료를 퍼 소들에게 주었다. 궤를 덮는 나무 덮개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또 얼마나 단단히 닫혀 있었던지, 그 어떤 짐승도 거긴 침입할 수 없었다. 테오필이 직접 만든 궤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가업에 대한 의식도 없다고 테오필은 말하곤 했다. 자신이 물려받아 일 해 온 땅을 자기 아들들에게 이어받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두껍고 뻣뻣한 종이로 된 부대를 비우려면 흰 실로 봉합된 곳을 헐어야 했다. 실을 자를 칼이 필요하다. 궤위에 매어 둔 선반에는 정전 때를 대비한비상용 전등과 나무 손잡이의 주머니칼이 항상 놓여있었다.

아무 데나 칼을 대서는 안 된다. 꼭 한 군데 매듭을 정확히 끊어야만 실 전체가 힘들이지 않고 풀려 나온다. 다른 곳을 자르면 종이를 찢거나 매듭을 풀거나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정확한 장소에 갈을 대면 그 실을 당기는 재미가 마치 팽이를 돌릴 때와 같다. 순식간에 풀려 나오는 실에서는 윙 하는 경괘한소리마저 들려온다.

침침한 불빛 아래 때론 제자리에, 때론 엉뚱한 곳에 칼을 대곤했다. 테오필은여러 번 내게 보여주었다. 아무 말 없이 보여주기만 했다. 그저 칼을 갖다 대고 실을 당겼다. 무언(無言)의 교수법이었다.

그 선반 아래엔 커다란 못 하나가 돌벽에 박혀 있었다. 부대에서 나온 실들을 이 못에 걸어 두었다. 실들 또한 요긴하게 쓰였다. 젖을 짤 때면, 소 왼쪽 뒷다리와 꼬리를 묶어 두는 데도 이 실이 사용되었다.

우리 인생에서는 어떤 것도 헛되지 않습니다. 사제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