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느티나무 / 이희도
고향마을 어귀에 한 그루 느티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500년은 넘었지 싶은 노거수(老巨樹)다. 성인 네 명이 양팔로 안아야 할 만큼 둘레가 넓고, 옆으로 뻗은 긴 가지와 이파리는 한껏 그 풍채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나무 꼭대기에는 고목 같은 줄기가 여럿 보여서, 어딘가 옛날의 창창했던 모습이 조금 엷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수호신처럼 길목을 지키며 가장 먼저 맞아주는 나무다.
벌써 뜨거워진 유월의 햇볕이 싫어 느티나무 아래 앉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수많은 이파리들이 한들거리며 ‘오랜만이다, 잘 있었느냐’, 속삭여주는 듯하다. 앉은 채로 나무를 올려다본다. 까치가 찾아와 ‘까옥까옥’ 수다스럽다. 누구를 부르고 있을까. 다람쥐, 청설모도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옮겨 다닌다. 그 모습이 체조선수처럼 날렵하다. 거미는 잔가지에 그물망을 쳐놓았다. 어디 숨어서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개미는 줄 서서 나무를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느티나무를 당산목(堂山木)으로 섬겨왔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풍년 농사와 액운을 떨쳐내기 위해 이 나무에 고사를 지냈다. 단옷날 느티나무에 그네를 내고, 누가 공중으로 제일 높이 올라가는지를 겨뤘다. 가장 높이 올랐던 동네 형OO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내가 최고라며 싱글벙글거리며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다. 조금만 높게 올라가도 여자들은 겁에 질려 “엄마야!”하며 소리 지르는데, 형은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휘파람을 불며 여유가 있었다. 누나들은 두 줄에 몸을 맡기고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팔락이는 치마폭에 속곳이 보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느티나무 밑은 농부들의 사랑방이었다. 그곳은 뙤약볕에서 농사일하던 농부들이 새참을 먹으며 쉬는 곳이었고, 지친 몸을 잠깐의 낮잠으로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느티나무는 홍수로 벼가 물에 잠겨 시름겨워하는 농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농약을 잘못 썼는지 걱정하는 농부의 아픔을 묵묵히 받아주기도 했다. 벼가 잘 자라 대풍 기미가 보인다고 기뻐할 때도, 추수한 후 꽹과리 치며 나무 둘레를 돌 때도 잠잠히 함께 기뻐해주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느티나무는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애환을 담은 모든 얘기들을 느티나무 아래서 스스럼없이 서로 말하며 웃고 울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모두 떠나버린 빈 벌판에 늙은 나무는 홀로 서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이제 힘든 노동을 하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쉬기 위해 느티나무 밑을 찾는 일이 드물다. 농사를 짓는 일마저 기계로 하는 세태가 되었으니 그늘에서 새참을 먹으며 쉬는 것도 볼 수 없단다. 느티나무는 외로운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늘을 찾아오는 사람은 뜸하고, 누구도 느티나무 아래서 자식 자랑이나 무용담을 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고향은 면 소재지에서 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농촌이다. 산업화‧정보화의 영향으로 젊은이는 한사코 도시로만 나갔고, 농촌은 늙은 사람들만 남아 있다. 이런 추세는 해가 거듭될수록 가속화되어 노인 혼자 사는 단독세대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노인들만 사는 이 시골에서 어찌 느티나무인들 쓸쓸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노인들은 한없이 주기만 하던 세대를 살아왔다. 자식들에게 터전을 만들어주고 기반을 닦아준 노인들. 연륜이 깊어 삭정이 같은 모습이 애처롭다. 욕심 없이 세월에 순응하며, 정작 자신은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 고적한 노인의 일상들.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노인은 목을 빼고 행여 자식이 찾아오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보고 싶다는 말은 없어도, 두 눈은 앞산 밑 찻길만을 바라보고 있다. 젊었을 때부터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며 마을을 이끌던 그들은 이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서러운 노인으로 남고 말았다. 마치 지금은 느티나무를 찾는 이가 거의 없듯이.
쉼 없이 땀 흘려 일하고, 명절에는 민속놀이로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를 즐기던 그런 젊은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딱하다. 누렇게 벼가 익어 바람에 일렁이면, 농부는 얼마나 신명이 나서 배고픔도 잊고 춤추듯 기뻐했던가. 해진 무명 적삼에 땀범벅이 된 농부의 옷을 식혀주던 느티나무의 고마운 정을 지금 누가 알까 싶다. 느티나무 잎사귀에서 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참 동안 앉아 있다. 중천에 뜬 달을 보며 고구마를 삶아 먹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생 무 쪽도 그렇게 달고 맛있었다.
고샅을 달리며 술래잡기했던 지난날 순이, 영이가 어디서 나를 부르며 금방 달려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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