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이영숙
꽃은 목화가 제일이라는 속담이 있다. 겉모양은 별스럽지 않지만 실속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뜻일 게다.
목화는 아침에 슬며시 피었다가 햇살이 퍼지면서 헤벌어진 입을 다문다. 그렇게 기력 없는 꽃잎과는 달리 내실 있는 열매의 솜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낮의 뜨거운 빛을 싫어하는 목화보다는, 해바라기만큼이나 해를 좋아하는 여름 꽃인 능소화를 가장 화려한 꽃으로 추천하고 싶다.
우리 꽃은 아니지만 줄기의 길이가 사람의 키 다섯 배 이상이나 되는 걸로 보아 끈질긴 생명력에 찬사가 터져 나온다.
겹꽃잎의 넓은 깔때기 모양이 ‘불콰’한 색을 띄우며 길고 긴 줄기마다에 다닥다닥 피어 자태를 뽐낸다. 야산의 무덤가에 만개를 하니 더 화사해 보이는 환한 꽃을 우리 집 대문 옆에 옮겨 심고 싶다.
메꽃, 나팔꽃, 분꽃들이 햇빛에는 초절임이 되어 맥을 못 추나 능소화는 뜨거운 여름에도 도도하게 잎을 접지 않는다. 그런 고운 빛깔의 꽃이 혼자의 힘으로는 서있지 못한다. 긴 줄기를 어디에라도 기대어 감고 올라가야 하는 ‘기생꽃’이다.
능소화를 보노라면 부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예전 같으면 출가해서, 분가해서 애 두엇은 낳아 기를 나이인데, 나이 삼사십이 다 되도록 가정 이룰 생각은 안 하고 독신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신세대가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편한 것이 없게 뒤치다꺼리해 주는 부모를 믿고 자립할 생각을 안 한다.
신세대들은 대학생활도 길게 한다. 전공이 맘에 안 든다느니, 적성에 안 맞는다고 편입하기를 자유자재로 하며 자격증도 여러 개 소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해외연수도 필수라고 한다. 직장에 다니며 자기 계발이나 취미생활로 세월을 축내고 있다.
우리의 2세가 능소화처럼 기대어 살아가려는 습성을 갖게 된 것은 부모의 책임도 있다. 홀로서기 하도록 강하게 밀어내지 못하고 자식을 상전으로 떠받들다시피 한 결과다.
60년대에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앞도 보이지 않는 서독탄광과 낯선 서독병실에서 구슬땀 흘린 우리의 오빠와 언니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살게 되지 않았을까. 일궈놓은 경제반석 위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도 사람의 정이 그리운지 늦둥이 바람이 불고, 애완견을 자식처럼 키운다. 다 큰 자식 결혼시켜 독립시킬 생각에는 느긋하다.
자식들이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한다 하더라도 맞벌이를 한다면 다시 보살펴 주어야 한다. 밑반찬 만들어 나르는 일이며 손자. 손녀까지 맡아야 할 경우도 있다. 자식사랑은 끝이 없다. 하지만 노년에까지 굴레에 얽매인다는 것은 감옥이다. 재미삼아 하기에는 너무 힘에 겨운 작업이다.
능소화가 어린 소나무의 허리를 칭칭 감고 돌아 나무의 순까지 점령해 목을 누르고, 그것도 모자라 더 감길만한 곳을 찾느라 하늘을 향해 헛손질을 해댄다. 능소화가 소나무를 휘감아 올라가 자태를 뽐낼 때, 솔잎은 제 몰골이 아니다. 죽을 것처럼 노랗게 질려 있다.
한해살이 식물인 작달막한 목화는 버거운 다래를 매달고도 홀로 서 있는 강단을 보여 주지만, 능소화는 홀로 서기가 버거워 옆의 나무를 의지하지 않고는 길게 벋어 고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 능청스러운 저 능소화는 우리 주변의 신세대 모습이다.
능소화가 제 혼자의 힘으로 몸을 추스르며 고운 모습을 자아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중국미인 같이 화려한 능소화를 그래도 미워 할 수는 없다.
하는 짓이 밉다고 미워 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미워도 떠나보내기 싫은 자식이다. 미워도 꺾어 버릴 수 없는 저 화사한 능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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