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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바보 어머니 / 황성규

바보 어머니 / 황성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신촌 집에서 시내를 지나 한 시간이나 더 가야 하는 먼 곳에 있었다. 조금만 늦게 나가면 콩나물시루와 같은 만원 버스에 시달려야 했고 시간도 훨씬 많이 소요되었다. 그것이 싫어 나는 늘 새벽밥을 먹고 아침 일찍 학교로 갔다. 새벽까지 장사를 하신 어머니를 깨우기 싫어 내가 아침밥을 챙겨 먹고 간다고 해도 잠깐 눈을 붙인 어머니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날마다 밥을 꼭 새로 지어서 아침을 챙겨 주셨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고된 일을 해야 하는 어머니는 걸어 다니면서도 눈을 뜨고 잠을 잤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스르르 졸곤 하셨다. 나 때문에 잠이 부족한 바보 어머니를 보면 나에게인지 어머니에게인지 모를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가게에서 쓸 김치를 담그게 되는데 해마다 1,000포기의 김장을 해왔다. 그 많은 배추를 가게 일을 끝내고 시작해서 혼자 소금물에 절이는 작업을 밤을 새워 다 해오셨다. 어머니는 철인처럼 사셨다.

억척을 부리시는 어머니께 몸을 추스르며 하라고 말씀을 드려도 들을 척도 안 하셨다. 모두 당신의 손으로 해야 할 일들이니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헌신이 하늘도 감동시킬 만큼 큰 정성이었던 것 같다. 우리 4남매 모두 어머니의 헌신적인 행동을 보며 한 순간도 잘못된 생각을 해 본적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다. 장사 또한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입 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손님이 계속 늘어났고 그런 만큼 어머니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병들고 나이 드신 어머니를 막내 여동생 집에서 신촌 내 곁으로 다시 모셔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혼자 남게 되는 어머니를 두고 집으로 오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 퇴근을 미루고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 말벗을 해드리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식사는 혼자 해서 드리지 말고 근처 음식점에서 사서 드시라 하며 처음 얼마간은 모시고 다녔다. 홍콩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며 그것이 혼자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설득을 했다.

소용이 없었다. 돈도 아깝고 끼니때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다고 하셨다. 집에서 손수 음식을 해서 드시다가 넘어지면서 머리에 충격이 가해져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말았다. 병원에 계시는 일주일 동안 곁에서 찬찬히 어머니 얼굴을 살펴보았다. 철인처럼 강했던 모습도, 고왔던 젊은 날의 모습도 간 곳이 없고 병들고 지친 힘없는 노인 한 분만이 있을 뿐이었다.

적지만 예쁜 얼굴에 당찬 모습의 어머니는 오로지 가족과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 오셨다. 남는 것은 병들고 지친 깊게 파인 주름밖에 없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혼신을 다해 오셨던 당신은 병마의 고통에 일그러져 찡그린 모습만 남아 있을 뿐이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치고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사시느니 고통 없고 평화로운 하늘나라로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내가 어릴 때 아프고 힘들다고 칭얼거리면 어머니가 편히 하늘나라로 가라고 나를 포기 했었던가? 밤새 내 옆에 앉아 손을 어루만지며 깨어나기만을 기원하던 어머니의 눈물 젖은 간절한 눈망울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바보처럼 살았다고 우리가 어머니를 정말 바보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을 하였다.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나도 끝까지 지켜 드려야 도리라고 믿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고 살다 갈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연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환하게 핀 연꽃,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