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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외출 / 김희자

외출 / 김희자

 

 

 

뒷집 엄마가 귀환했다. 가을 태풍이 오기 전 요양병원으로 가셨다가 한 달 만에 빈집으로 돌아왔다. 가을과 겨울 사이. 그 곱던 풍경도 색을 잃고 늦가을 서정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잎이 모두 진 상수리나무가 찬바람을 맞고 섰다. 마당에 서서 허공과 눈을 맞추던 나는 여름날의 무성함은 자취도 없고 맨몸으로 선 노쇠한 나무가 헛헛한 노모 같아 시선을 돌렸다.

현관을 들어서며 마루에 앉아 계신 어머니께 여쭈었다. “뒷집에 한 번 가보시겠어요?”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외출 채비를 하신다. 손거울을 꺼내어 머리를 만지고 마비가 되지 않은 손으로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천 근 같은 몸을 일으켜 뒤뚱거리며 화장실까지 다녀오신다.

아버지께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신 후 첫 이출이다. 하루 두 번, 유모차에 몸을 의지한 채 운동 삼아 마당을 걷는 것이 전부이니 대문 밖 나들이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외출 채비로 분주한 어머니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미 퇴색한 자연처럼 울긋불긋하던 열정이 시든 지 오래. 늙은 나목처럼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지만 몸단장하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소리 없이 웃는다.

경계의 담도 없이 뒷집과 이웃으로 지낸 지 수십 년. 어머니도 요양병원에 간 뒷집 엄마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였다. 뒷집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만 계시는 어머니의 유일한 말벗이었다. 가을 초입 요양병원으로 가시자 어머니는 종일 밖만 내다보며 지내셨다. 다시는 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뒷집 엄마와 상봉하게 되니 표정 없던 얼굴이 꽃처럼 피웠다.

아무 지척이 없던 뒷집에 다시 훈기가 돌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뒷집 엄마는 그토록 오고 싶던 집으로 왔다. 하려한 도시 생활의 풍요와 안식을 줄 것 같던 요양병원도 오래 살던 집보다는 못했나 보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할 거라 입을 모았지만, 나는 병세가 나아져 꼭 돌아오기를 바랐다.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뒷집 엄마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밤잠을 설치고 안절부절못하는 바람에 진정제가 투여되고 몸 억제까지 당했다. 치매 증세와 갑갑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사와 약을 쓰면 끼니까지 거르며 온종일 처져 있었다. 밤중에 바스락거리다가 옆 침대 할머니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정신이 온전해지면 나를 데려가라, 집에 보내주라!”하며 애원했다. 결국 병원을 나온 뒷집 엄마는 딸네 집에서 병이 나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 볼이 살이 붙고 치매도 완화되어 잊어버린 나이를 다시 찾았다.

편마비가 있는 어머니는 서서 활동하거나 걷기가 어렵다. 안방에 누워계시거나 마루에 앉아 투명한 창문 밖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골목을 오가는 관광객의 발소리를 들으며 세상과 소통한다. 텔레비전 보는 것도 즐기지 않고 노래를 하거나 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낙으로 사는가 싶어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 했지만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자존감 강한 어머니는 말이 어둔한 당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화장실에 갈 때는 엉덩이를 입구까지 밀고 가 손잡이를 붙들고 들어선다. 볼일을 본 후에도 바지춤을 허리까지 올리지 못한다. 엉거주춤 엉덩이에 걸려 있는 바지춤을 올려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내가 고향으로 들어온 후 낯빛이 좋아졌고 거동도 나아졌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가슴 치는 일도 줄었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안한지 모험을 하며 덛는 연습까지 하신다.

유모차를 밀고 마당을 나서는 어머니의 등에 햇살이 쏟아진다. 남해의 겨울 햇살은 봄볕처럼 따사롭다. 대문을 나서 몇 걸음만 옮기면 갈 수 있는 뒷집이지만 어머니에겐 십 리 밖보다 멀다. 한 발짝 옮겨 놓는 것도 버거워 숨을 몰아쉰다. 몸을 의지한 유모차 바퀴는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오르며 헛돌기만 한다. 말동무라도 하라며 외출을 권했지만 괜한 짓을 했나 싶다.

영차, 영차! 어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며 뒷집 대문으로 들어선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선 어머니가 뒷집 엄마를 보시더니 아이고.” 하며 두 손을 덥석 잡는다. 반가움 반, 안타까움 반이 섞인 얼굴로 눈시울을 적신다.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이 회포를 누누길 바라며 집으로 왔다. 두 살 차이인 두 엄마는 이미 팔십 중반을 넘어섰다. 귀는 철벽이 되었지만, 이웃으로 지낸 지 오래라 눈빛만 봐도 통하리라. 한 시간 후 가보니 두 분이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계신다. 나는 씩 웃음을 치며 밖으로 나왔다.

노인들은 요양병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곳이 마지막 거처가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살던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연로하신 분들의 마지막 꿈이다. 아파도 내 집에서 죽겠다는 두 엄마, 이제 나는 두 엄마의 보호자이자 돌보미가 되었다. 내 어깨가 무거워진 건 사실이지만 생의 끝자락에 선 그들의 등피가 되어야 한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늦도록 모실 수 있다는 것 또한 행복이라면 행복일 테니.

뒷집 마당을 나서려니 언덕 위에 선 늙은 상수리나무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섰다.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고 점심때가 되어간다. 두 엄마를 위해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준비할까? 며칠 전, 마을 어르신이 어머니와 먹으라며 다랑논에서 거둔 쌀을 들고 왔다. 그 쌀로 한죽을 끓여야겠다. 구수하게 죽을 쑤어 두 엄마를 불러야겠다. 뒷집 엄마도 우리 집으로 외출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