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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욤비와 멋진 바보들 / 박서연

욤비와 멋진 바보들 / 박서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앞에 선 흰색 탑차에 먼지가 시커멓게 쌓여 있다. 그 위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바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누가 바보일까. 낙서를 보고 있는 나일까.’ 세상엔 똑똑한 이들도 많고 정말 바보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난 그들을 진정 멋진 바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이름은 욤비란 책을 읽었다. 욤비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소왕국인 부왕공고의 왕자다. 콩고 정보국에서 일하던 그는 조셉 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부정부패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상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부에 보고했고, 콩고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도 이 문서를 전하려다 실패했다. 이 일로 그는 비밀감옥에 수감됐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탈출해서 우리나라까지 오게 됐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어도 모르는 상황에서 콩고 대사관으로부터 쫓기는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없이 난민인정을 거부당하면서 인권이 짓밟힌 삶을 어디 삶이라 할 수 있었겠는가. 공장 노동자로 떠돌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에게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6년 만에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난민지원단체 봉사자들 덕분이었다.

조건 없이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욤비가 난민인정을 받도록 법무부에 소송을 내고 승소할 수 있도록 도운 김 변호사, 멀고 먼 콩고까지 가서 숨어 사는 그의 가족들을 만나 비밀감옥의 수감기록을 구해다 준 아브라함, 깜둥이라 무시당하며 오갈 데 없는 그에게 선뜻 방을 내 주고 함께 산 미스터림 등, 그들의 사랑과 나눔이 한 사람을 우리나라의 품에 안기게 했다.

욤비는 유일하게 갈 수 없는 곳이 된 그리운 조국 콩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포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난민과 인종차별대책에 관한 일을 하며, 콩고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신의 나라에서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정치적, 종교적, 문제 등 자유를 제약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검증과정에서 난민인정을 거부당하면 다음 심사 때까지 그들은 속수무책이다. 돌아 갈 곳도 머물 수 있는 곳도 없다. 난민인정을 받을 때까지의 과정에서 욤비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없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던 딸. 어느 날, 소말리아에서 혼자 온 열다섯 살 소년을 인터뷰하고 우리나라의 난민제도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도 세계난민협약에 가입이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겨우 5백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1만여 명의 난민 신청자들은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국가의 안위와 정치상황에 가려 난민제도가 존재하는 근본적 취지인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의 인권을 위해 이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진정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피운다. 욤비도 콩고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을 도우며 멋진 바보로 살고 싶어한다. TV에 욤비 가족이 나온다. 그들은 지금 멋진 바보들의 도움으로 함께 살고 있다. 욤비가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고추장을 두 숟가락이나 푹 퍼 넣는다. 아들 조나단은 맵다고 하고, 딸 파트리시아는 더 맵게 해 달라고 아빠를 조른다. “이것이 바로 욤비 스타일~ 김치찌개라며 그가 환하게 웃는다. 그 행복한 웃음 뒤에 멋진 바보들이 있음을 느끼며 나도 함께 웃는다.

멋진 바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