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상식 / 이재봉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점순 할머니시다. 오늘 바쁘다고 하신다. 무슨 일 있으신가 여쭈니까 쭈뼛쭈뼛 머뭇거리시다가 말씀하셨다.
“나 오늘 2시에 국회의사당으로 상 받으러 가. 내가 쓴 시가 뽑혀서 상을 준다는 구먼. 나는 바쁜 희경 엄마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는데, 큰아들이 꼭 알려야 한다고 해서 전화했어. 같이 가줄 수 있겠수?”
“어머 그러셨군요. 축하드려요! 나무 장하셔요. 저도 꼭 가서 상 받으시는 것 봐야지요.”
나는 내 일처럼 기뻐서 흥분이 되고 가슴이 뭉클했다.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년 전 그날은 친구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서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었다. 병원 앞 건널목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사람들 틈새로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할머니 한 분이 땅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얼른 그분을 일으켜 세워 어깨를 감싸며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검사를 하더니, 팔목이 골절되어서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 보호자가 되어 치료를 끝내고 집에 오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보다 10년 가까이 연상인 그 할머니와 나는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기쁠 때도, 하는 일에 지칠 때도, 서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었다. 한번은 배추 겉절이를 담아 가지고 오셨는데 아주 맛있었다.
“나는 희경 엄마가 너무 좋아. 하느님이 만나게 해주셨나 봐.”
“저도 할머니가 좋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어요?”
“그 양반 가신 지 10년이나 됐어.” 하시는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시지요. 할아버지 만나러 자주 자주 가시겠네요.”
“아니, 잘 안가. 영감이 젊었을 때 내 속을 아주 많이 섞였거든. 큰아들한테 나 죽으면 잘 생긴 주목나무 한 그루 사서 수목장 해달라고 했어.”
점순 할머니의 고향은 물 맑고 공기 좋은 강원도의 어느 산 속 오지마을이란다. 당시의 할머니 집은 마을에서 제일 크고 땅도 많았다. 넓은 밭에는 농작물이 풍족해서 어려운 집에도 나눠주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점순 할머니가 여섯 달 되던 해 어느 날, 아버지가 허리를 구부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넓은 방의 아랫목 윗목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이고, 나 죽는다고 소리소리 지르시다가 날도 밝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맹장이 터진 것인데, 80년 전 산골마을이라 치료도 못해보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가 서른하나였다. 점순 할머니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당시 스물일곱 살 밖에 안 된 어머니마저 갑자기 돌아가셨다. 배가 아프다고 동네 침술인에게 침을 맞고 오셨는데 밤새도록 살려달라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아버지를 따라가셨다고 한다.
어린 점순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와 기지도 못하는 갓난 남동생뿐이었다. 동생이 배가 고파 울면 점순은 아기를 업고 젖동냥을 다녔다. 아기가 클 때까지, 옆집에 사는 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점순이가 옆집에 아기를 업고 가서 “애기가 울어요.”하면, 받아 안아 주셨다. 젖을 얻어 먹이고 아기가 잠이 들면 집에 업고 왔단다.
점순은 어린 동생 때문에 학교에도 못가고 엄마처럼 어린 동생을 보살피고 길렀다. 동생은 지금도 누나를 엄마같이 의지하며 산다. 늦게나마 동생의 우애와 자녀들의 극진한 효도를 받으며,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고 편안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삶의 온갖 어려움을 잘 극복해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점순 할머니는 작년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학교(한글교육기관)에 다니신다. 어느 날 이름도 못쓰시던 분께서 책가방을 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었는데 모르는 게 많아서 왔다고 하신다. 노트를 받아 펼쳐보았다. 틀린 글자가 많아 고치고, 글씨를 또박또박 잘 쓰셨다고 칭찬해 드렸다. 할머니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신다. 모르는 게 있으면 늦은 시간에도 우리 집으로 물으러 오셨다.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모습이 안쓰러워 열심히 가르쳐 드렸다.
상을 받으시는 날, 서둘러 시상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장소를 정확히 몰라서 여기저기 헤매다 보니 시간이 지나버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요일이라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물어도 모른다고 하였다. 도로를 건너서 국회도서관 뒤쪽으로 돌아서 가보았다.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문 앞에는 ‘문해, 첫 시작을 열다’라고 쓴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식장에 들어서니, 전국에서 오신 문해학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앞줄에 앉아 계셨다. 뒤에는 가족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자리로 가서 점순 할머니를 만났다. 손을 가만히 잡았더니 떨고 계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눈가에 살포시 눈물이 맺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드리고 뒷자리로 물러나왔다.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점순 할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단상에 올라가 당신이 쓰신 시를 읽었다.
엄마 나 학교에 입학해서 글씨를 배웠어요.
내 이름도 못 쓰던 내가 시를 썼어요.
골목길 지나다가
높이 달려있는,
간판에 쓴 글씨도 읽어요.
여기까지 낭독하던 할머니가 목이 메어 읽지를 못하신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나는 있는 힘껏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늦은 연세에 그리 배우려고 애쓰다가 상을 받으시니 존경스러웠다. 팔십 대 고령에도 열심히 글을 배우는 점순 할머니의 성품 그대로, 모진 세월 견디고 노력하며 사신 일생에도, 신의 축복으로 상을 내리신 것이라 믿는다. 수상식이 끝나고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었다. 자랑스러운 상장과 상품을 두 손에 들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어린 시절 아팠던 기억들은 모두 잊으세요.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점순 할머니,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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