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군견일계(群犬一鷄) / 박헌규

군견일계(群犬一鷄) / 박헌규

 

 

 

원조 할매 보신탕집문간은 항시 비좁다. 여름 겨울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낮 시간에는 빈자리 찾기가 힘이 들 정도다. 값싸고 맛있는 고기 많이 주는 보양탕집으로 인근에서 꽤나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집 주인장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투박한 언어다. 순간순간 못물 터지듯 쏟아지는 속어가 얼마나 건지 자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욕쟁이 할매 집으로 더 잘 통한다.

지난 중북(中伏) 날이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할 일이 있어 청했더니 욕쟁이 할매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욕은 쉽게 먹을 수 있어도 보신탕은 지금껏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 순간 망설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자청해서 대접을 해야 할 형편이니까. 나는 다른 종류의 탕()을 시킬 요량으로 갔다. 익히 소문을 들어 짐작은 했지만, 이른 점심 시각임에도 식당 안은 벌써 대문원이다. 신발 벗어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애써 비집고 들어가는데 출입문 위쪽에 달린 요령(鐃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허리에 불룩한 전대를 찬 주인인 듯 보이는 할머니, 몇 자국 앞서 들어간 요령 소리를 듣고는 불쑥 내 뱉는 첫마디가 가관이다.

저 안쪽에 들어가 보이소.”

할머니, 사람 좀 보고 이야기하지요.”

치다볼 끼 뭐가 있노.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누군가 다 아는 긴데. 다 개놈이지, 몇 그릇이고?”

!”

, 그리 놀라노. 사내가 묵으면 개놈이고, 기집이 묵으면 개년 아이가. 여기 오는 사람, 시장도 군수도 다 그기다.”

그럼 닭 묵으면요?”

그제야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가소롭다는 듯 혀를 끌끌찬다.

천 원짜리 얼음 닭, 뜨신 물에 목욕시킨 거 팔천 원이나 주고 묵는 거 보이 닭대가리지.”

그럼 염소탕 주이소.”

얌세이는 더버서 안 키우는데.”

식탁에 앉은 개놈, 개년, 동시에 개 웃음 한바탕 짓는다. 완전 개판이다.

개 하나, 닭 하나요.”

()날 보신탕집, 군견일계(群犬一鷄)는 외롭고 슬프다.

주방 쪽으로 발걸음 옮기는 할머니, 상대할 가치가 못 된다는 듯 아무런 대꾸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할머니 입속에 든, 못 다한 말을.

닭대가리

닭대가리

워메이, 저 못난 닭대가리…….’

올해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사십 년 동안 이 자리에서 보신탕 장사를 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 집에 들어서면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허름한 한옥을 몇 번 개조했다고 하지만 지붕이나 벽은 겨우 비바람막이 역할이나 하는 낡은 집이다. 출입문은 거의 기어들고, 기어 나와야만 된다. 그리고 할머니 나이도 몇 년째 멈춰 버렸다. 손님이 물으면 해마다 똑같다고 한다. 물론 내년에도 여든두 살일 것이다. 찾는 손님도 마찬가지이다.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손님이 잊지 않고 단골이라는 명패를 가슴에 품고 찾아온다고 하니 이 집에서는 집도, 주인도, 손님도 그리고 음식도 모두가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가 말하는 한창때는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그때는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평균 큰 개 두 마리씩 먹어치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할머니 손에서 사라진 개를 셈해 보면 입에 담기가 뭐할 만큼 징그럽고 무서운 숫자다. 지금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개들이 인지할 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것을 알아챌 수만 있다면 이 집 앞에서 우리나라 개국 사상 초유의 개들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더 기이한 것은 사십 년 동안 같은 장사를 하다 보니 할머니가 만든 전통, 세 가지 불문율이 이 집에 존재하는데 이 또한 희한하다. 세상에 갑질, 갑질해도 이렇게 심한 갑질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첫째, 계산은 반드시 현금으로 해야 한다.

둘째, 밑반찬 추가 요구는 금물이다.

셋째, 어떤 손님이 아도 할머니는 반말이다.

 

현금 없으면 차라리 공짜로 먹으라고 한다. , 먹고 난 뒤 현금이 없어 카드를 내밀면 욕 한번 세게 덤으로 주고 그냥 돌려보낸다. 카드기기를 설치하면 지금보다 고기 양을 반으로 줄이든지, 가격을 배로 올려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밑반찬은 할머니 손이 커서인지 추가 요구가 필요 없을 만큼 미리 많이 준다. 그 대신에 남기면 죄받는다며 긴 너스레를 떤다. 할머니의 전매특허인 욕설이 섞인 반말은 다들 불만보다는 재미있어하고 웃고 말지, 거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자는 할머니 욕은 양념이고 디저트, 후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할머니가 무지막지한 갑질을 해도 기삿거리가 못되는 것을 보면, 값이 헐하고 맛있는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듬뿍 주니까 위 세 가지 모두가 상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닭대가리 소리 들어도 좋다. 다시 한 번 할머니 집을 찾고 싶다.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 하나가 내 가슴을 찡하게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지금껏 고수하고 있는 것, 얄팍한 장사 수완이 아니다.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집에 먹으러 오는 사람, 가진 것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맛있게 먹고 배가 불러야 한다.”

오랜 세월, 거친 삶 속에서도 배고픈 이를 배려하는 할머니의 고운 마음이다. 오래오래 여향(餘香)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지난 사십 년을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변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