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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상객(上客) / 박헌규

상객(上客) / 박헌규

 

 

 

사촌 누이가 멀리 남도 청년과 눈이 맞아 백년가약을 맺었다. 며칠 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신행을 가는데 숙부님이 계시지 않아서 집안 장조카인 내가 상객(上客)으로 가게 되었다. 신행 곳이 전라도 나주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서둘렀는데도 거리가 멀어서인지 아니면 늦가을 해가 짧아서인지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지척의 거리에 별나게 시끌벅적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말하지 앟더라도 잔칫집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온 삼이웃이 모여들어 손뼉을 치고 한마디씩 하는데, 이곳 특유의 성량, 어투가 어찌나 낯선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이 떠나갈 듯이 웃었다가 이내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고성에 정신까지 혼미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 입 꾹 다물고 앉아 있으려니 인적 없는 외딴섬에 나 혼자 놓인 것처럼 순간순간 적잖이 당황도 되었다. 그리고 사돈 간의 첫 대면 인사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조선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용을 썼던지 팔다리가 저리고,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나니 배에서는 시장기가 몰려왔다.

가을의 짧은 해가 설핏 기울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쯤 음식상이 들어왔다. 큰 고자상 위에는 이곳 산()과 바다()와 들()이 다 모여들어 요란스럽게 향연을 펼치는 듯했다. 상을 가득 매운 음식들의 종류와 형형색색의 모양에 눈이 번쩍 띄고, 입이 쫙 벌어질 지경이었다. !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이럴 때 나온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의 호강이 반드시 입까지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좋은 음식을 눈앞에 가득 두고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아픔은 고문에 버금갈 정도였다. 체면이 나의 입에 빗장을 걸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어려운 자리, 사돈집에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함부로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먹는 시늉만하고 눈요기로 헛배를 채울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나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홍어 고기였다. 사돈어른께서 술 한 잔을 권하면서 안주로 홍어 고기를 가리켰다.

요놈 한번 드셔 보셔이잉, 요로코롬 잘 익은 놈은 만나기가 쉽지 안응깨…….”

상 위에는 군데군데 홍어 고기 접시가 놓여 있었다. 삭힌 홍어, 홍어 찜, 홍어 무침, 홍어 튀김 등 홍어 고기의 대변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어고기를 싫어한다. 그중에서도 삭힌 홍어는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거의 질색에 가까울 정도로 멀리한다. 어쩌다 입에 한 점 가져갈라치면 입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코가 먼저 알고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그 고약한 냄새는 애 속을 온통 발칵 뒤집어 놓고 다른 음식조차 못 먹도록 한다.

내가 홍어 고기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것을 알 리 없는 사돈어른은 어서 한 점 먹어 보라는 듯 홍어 접시를 자꾸 내 턱 밑으로 들이밀었다. 하는 수 없이 술 한 전에 삭은 홍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는 눈을 질끈 감고 씹지도 않고 삼켰다. 목구멍에 다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맛이 어떠냐고 다그쳤다. 이미 답은 정해져있는 것, 맛이 아주 좋다고 하자 이번에는 홍어고기는 요렇게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면서 김치에다 돼지고기 한 점과 홍어 한 점을 싸서 건네주었다. “()는 건널수록 깊고 재()는 넘을수록 험하다.”더니 갈수록 태산이었다. 억지로 입 안에 넣고는 몇 번이나 굴리다가 김치와 돼지고기는 용케 골라 대충 씹어서 삼키고 홍어 고기는 혓바닥 밑에 숨기고 냄새의 고통을 참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 가지는 못했다. 내 비위를 뒤틀어 놓는 냄새로 인해 눈물 콧물까지 찔끔거리는 고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사돈어른의 눈을 피해 얼른 입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마땅히 처리할 곳을 찾지 못했다. 한참을 손에 쥐고 숨기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양복 주머니에 그대로 넣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쓰레기통을 찾아 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사돈어른이 권하는 술을 박절하게 사양 못하고 여러 잔 마시다 보니 호주머니에 넣어 둔 홍어 고기를 버린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취중에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방 안에는 홍어 고기 냄새가 어젯밤보다 더 심하게 진동을 했다. 방문을 열어도 소용없고, 바깥에 나가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어찌나 독한지 머리까지 아팠다. 그 역겨운 냄새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더 심하게 풍기며 나를 따라다녔다. 삭힌 홍어 고기 한 점이 내 호주머니 속에서 밤새도록 방 안 뜨거운 기운과 어울려 썩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냄새의 근원을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알았다. 우연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물컹하고 잡히는 것이 있어 그제야 간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호주머니 속 홍어 고기가 전라도 경상도를 넘나들면서 나를 크게 우세시키는 말썽을 일으켰다.

집에 돌아와 막 옷을 갈아입으려고 할 무렵, 나주에서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의 조심성 섞인 목소리가 정말 가관이었다.

오빠요, 진짜로 똥 쌌어요?”

야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하노. 누가 똥을 쌌는데?”

동생 말에 의하면 내가 떠난 날 오후 늦게 시돈어른이 마치 무슨 긴한 소식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새아가야 친정에서 무슨 기별이 없더냐. 아무래도 사돈이 좀 이상하더라.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더구나. 혹시 가는 도중에 무슨 탈이라도 생겼는가! 해서 내가 물어본다. 아무 일 없으면 다행이고.”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더라고 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자초지종 얘기를 하고 한바탕 웃어넘겼지만, 그때 내 기분은 똥을 싼 것보다 더한 똥을 씹은 것 같았다.

갓 시집간 새색시가 그 소리를 듣고 심경이 오죽했으면 오빠 똥 쌌느냐고 확인 전화까지 했겠는가! 정말 남사스럽다. 홍어 고기 한 점이 내 체면을 이렇듯 사납게 만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동생에게는 모든 것은 홍어 고기 못 먹는 내 죄다. 그놈, 홍어가 여러 사람 욕보이는구나.”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지만, 기이(旣已) 나는 사돈댁에서 우세를 톡톡히 당한 똥을 싼 상객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