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거리를 걷다 / 한복용
창밖이 어둑하다. 단풍이 그 어둑한 기운에 흠뻑 젖어있다. 모자를 눌러쓰고 산책길에 나선다. 아파트 현관을 벗어나자 보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챙겨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걷는다. 어차피 긴 시간을 작정한 것은 아니다. 종일 집안에 앉아 있자니 갑갑하기도 하고 문득 바깥을 걷고 싶어졌다.
서울 변두리 아파트 주변은 언제나처럼 조용하다. 산 밑이고 세대 수가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시끄럽거나 어수선하지 않다. 동네를 걸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신경 쓸 일이 없어 그저 편안하다. 낙엽을 쓸던 경비아저씨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습관처럼 인사를 한다. 나도 고개를 숙이며 깊이 눌러쓴 모자를 매만진다. 양쪽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위로 단풍잎이 뚝, 뚝, 떨어진다.
수락산역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모 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2백여 미터 걷다보면 수락산 등산로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그 길 반대편을 따라 전철을 타러 가곤 한다. 이사 와 한동안은 큰길을 이용했다. 살면서 지름길을 알게 되었고, 웬만하면 그 길로 다닌다.
시간을 정한 산책이 아니어서 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돌아오는 시간도 내 마음이다. 천천히 골목을 지나며 주변을 둘러본다. 파란지붕 집은 아직 감을 따지 않았다. 정원을 가득 메운 감나무. 소담스런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 길을 오가며 이제나 저제나 감 따는 날을 기다렸다. 사다리를 받치지 않고는 절반도 딸 수 없을 만큼 나무는 지붕을 훌쩍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겨울이 올 때까지 감을 딸 수 없을 것이다.
주택가 어린이집 앞 정원에 심어 놓은 비트가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세 개씩 심긴 비트는 두 개의 길쭉한 사각화분에서 살을 찌우고 있다. 그곳을 오갈 때마다 앙증맞은 비트는 나를 웃게 한다. 아침마다 흙을 밀고 올라오는 비트를 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해본다. 굵은 이파리 사이로 연이어 피어나는 새로운 이파리를 고사리 손가락으로 세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비트를 만져보고 싶지만 꾹 참는다. 몰래 뽑아가는 양심 없는 아줌마로 오해받기 싫어서이다. 그저 걸음을 멈추고 거리를 둔 채 잠깐씩 바라본다.
엊그제 문을 연 카페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주인만이 분주히 주방을 오간다. 건물 하나에 카페 하나가 법칙이라도 되는 양 우후죽순처럼 카페가 늘고 있다. 그런데도 카페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저 집도 방금 한 무리의 손님이 빠져나간 다음이리라.
기회를 만들어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막창집은 초저녁부터 만원이다. 막창 굽는 냄새가 아직 저녁식사 전인 내 위장을 유혹한다. 조만간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소주 한 병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옆의 편의점은 한산하고, 군데군데 술집은 음악소리와 이른 술꾼들로 북적거린다.
모두들 열심히 산다. 일터가 있다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이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는 증거이다. 일을 놓은 지 일 년이 넘은 나에겐 벌써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얼마의 일감을 챙겨 온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빗줄기가 눈에 띄게 굵어졌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이 입동이라며 처마 밑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남자가 힐끗 나를 쳐다본다. 남자 옆에 선 여자도 나를 안타까운 듯 건너다본다. 내가 그대로 걸음을 멈추면 손짓이라도 할 기세다. 저들은 나의 무엇을 보았을까. 검정색 추리닝에 감색 잠바, 넓적한 운동화에 깊이 눌러 쓴 모자. 거기에 표정을 짐작할 수 없는 눈빛이 수상했던 것일까? 가만 보니 그들의 옷차림도 나와 다르지 않다. '사는 거 별거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모른 척 걷는다. 그들이 내뿜는 담배 냄새가 구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퉁이를 돌았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담배 냄새가 낙엽 냄새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리고 문득,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싶어졌다. 오래전 이때쯤이면 따끈따끈한 우리 집 안방 아랫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었다. 웃음소리도 말소리도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밥상이었다. 어느새 그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던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하루살이에 여념이 없다. 담배 냄새가 왜 장작불을 연상케 하고, 따뜻한 안방 구들을 생각나게 하고, 사랑하는 피붙이들을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담배 냄새가 잘 익은 낙엽 냄새처럼 구수하게 느껴졌다.
은행 카드기기 앞에 선다. 대출이자 나가는 날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방금 받았다. 아니다. 아침에 온 문자를 저녁때에야 확인한 것이다.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이 237,290원. 종일 나는 무얼 하느라 전화기를 들여다보지도 못했나. 눈앞이 흐리다. 돋보기를 놓고 나왔다. 더듬거리며 숫자를 익히고 계좌를 눌러 송금한다. 돈이 빠져나가고, 빠졌다는 알람소리가 들리고, 잔고 얼마라는 문자메시지가 또 뜬다. 오랜만에 잔고를 확인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언제부턴가 나는 통장잔고 확인을 하지 않는다. 쌓이지는 않고 빠져만 나가니 확인하는 게 불안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쓰렸다. 분명 내가 사용한 내용이 청구서가 되어 날아와 통장의 돈을 약속된 날짜에 빼내가는 건데,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싫어졌다. 그러든 말든 기계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원 단위까지 챙긴다.
어물쩍 대충 살아온 나는 자로 잰 듯 정확한 요즘 생활에 숨통이 조인다. 정확하다는 것은 뻔 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심적 속도가 한심할 정도로 느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이 어처구니없이 길게 늘어섰다. 길은 비비 꼬여 있다. 모두 쓸데없는 소모의 흔적이며 지울 수 없는 자국이다. 내가 원한 것도, 그렇다고 누군가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길인지 짐작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은 길이지만 되돌아가 제대로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 사느니, 차라리 지금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자살은 죄악이라 했지만, 굳이 그리 해석할 일도 아니지 싶다. 정말 아닐 때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는 나의 자실을 설계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다는 신호라고 본다.
비가 그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생각보다 빠른 귀가다. 무엇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로시난테*가 되어 그래도 살아야 할 내일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로시난테: 돈키호테가 타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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