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다 / 김상영
낡은 트럭에서 내린 굴착기가 가파른 비탈을 구물구물 기어 올라왔다. 괭이를 지팡이 삼아 괴고 섰던 산역꾼이 주섬주섬 제사상을 차렸다. 나는 소주를 봉분에 나눠 부은 뒤 절하고 물러섰다. 이윽고 그가 괭이로 묘의 이곳저곳을 내리찍으며 찍을 때마다 외쳤다.
“파묘, 파묘, 파묘.”
‘심봤다!’와 흡사한 소리가 유월의 이른 아침 안개 깔린 골짜기 멀리 퍼져나갔다.
굴착기 삽질 일여덟 번에 봉분은 맥없이 벗겨졌다. 이윽고 소죽통만 한 바가지 손이 섬세하게 흙을 걷어 관을 제쳐 열었다. 순간 뿌연 기운이 물씬 터져 오르더니 썩은 달걀처럼 독한 냄새가 낮게 깔려 퍼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광경이었다. 나는 흠칫 놀라 눅진한 삼베 수의를 곁눈질하며 소나무 뒤까지 뒷걸음질 쳤다가 다시 다가섰다. 살아생전 당숙모가 아련해서다.
유년의 음력 설날이면 갓 쓴 조부님을 따라 큰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곤 했다. 2㎞에 불과한 거리였어도 동트기 전의 땡땡 언 신작로를 걸을 때는 차디찬 기운에 숨이 탁 막혔다. 제삿밥을 짓던 당숙모는 “춥제?”하며 언 손을 꼭 잡아주셨다. 서걱대는 두루마기 소리와 꾸덕꾸덕 말라가던 퀴퀴한 메주 냄새 그리고 구수한 탕국과 꼬지 상어의 알싸한 맛을 버무린 느낌이 바로 당숙모였다. 조부님이 내게 장손 된 도리를 엄히 가르치셨다면 당숙모는 큰집의 상징을 아로새겨준 어른이셨다.
산역꾼은 서슴없이 묘 구덩이에 들어섰다. 삽으로 흙을 살살 긁어 퍼내자 시신이 공중 부양하듯 약간 떠 있는 모양으로 되었다. 틈새를 찾아 삽날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잘 들어가지 않았다. 넉넉히 깐 황토와 석회가 3년여의 세월에 마치 시멘트처럼 눌어붙은 것이다. 나는 당숙모가 고향 언덕배기 유택을 떠나지 않으려 버티시는 것 같았다.
산역꾼은 장갑 손에 침을 뱉더니 옆구리 깨를 옹차게 후벼 판 후 꼬챙이로 쑤셔서 기어이 구멍을 냈다. 시신을 묶은 밧줄이 굴착기에 걸려 쳐들어 지자 “두둑!” 허리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시신을 광목으로 둘둘 감는 동안 굴착기는 흙 몇 바가지로 묘를 메워 툭툭 다졌다. 굴착기 삽날에 밧줄로 걸린 시신은 흡사 성당 건립 때의 성모상처럼 흔들렸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발치께를 잡아 가재걸음으로 비탈진 산에서 내려왔고, 산역꾼은 연장과 제수를 챙겨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제수 보자기 사이로 말라깽이 명태가 대가리를 내밀어 희한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괴한 상황들에 어안이 벙벙한 나도 맨정신이 아니었다.
산역꾼은 시신을 낡은 승합차 뒷창문으로 삐딱이 밀어 넣었으나 미처 들어가지 못한 발치가 하늘을 차듯 창문 밖으로 허옇게 걸쳐졌다. 나는 시신을 모신 차를 뒤에서 따르며 태극기처럼 너풀대는 광목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화장터 가는 삼십 리 길에 스친 사람들은 설마 시신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시골 고향에서 홀로 사시던 당숙부가 파묘 3일 전에 세상을 뜨셨다. 자식들의 연고지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이라 부산이 장례식장이었다. 6․25 참전유공자로서 영천호국원에 안장하는 김에 당숙모를 합장코자 파묘를 단행하게 된 것이다.
재종형제들은 내가 묘의 위치를 알고 있음으로 시신 운구의 책임을 맡겼을 것이다. 한 부엌에서 팔촌 난다는 옛말처럼 내가 미더웠다고 하더라도 자식 중에 누군가는 현장에서 주관했어야 옳았다. 자식이 임석한들 영세업자의 거친 파묘나 마구잡이 이송 방식이 나아질 리야 없었겠지만, 마음이라도 함께해야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 부친의 장례와 모친의 파묘의 격은 같아야 했다.
묘를 파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재종형이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나서 벌초 땐가 어느 때던가, 슬쩍 물었다.
“형, 로똔가 뭔가 당첨되었다던데….”
“어엉? 무슨 말이고, 아이다.”
나는 얼쯤해져서 더 캐묻지 않았다. 로또가 당첨되었다면 그것은 유택 덕이라는 생각이다. 진위야 어찌 됐든 간에 당숙모의 유택이 명당이라 알고 살았다. 묘를 쓸 때 지관에게서 들은 말이 있어서다. 숲에 가려서 잘 모를 뿐이지 운이 트일 곳이라 했다. 서기瑞氣가 솟고, 당숙모가 버틴 건 그래서인지 모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죽어서도 그런가 보다. 합장이 끝나자마자 집과 전답이 팔려나갔다. 마치 호적을 파간 듯 말끔해졌다. 받을 복은 다 받았을 테니 떠나간들 어찌 말리랴. 산다는 건 하나씩 없어지는 걸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가붙이가 한 분 두 분 세상을 버리고 고향 땅을 떠나니 허망하다. 동구 밖 큰집 길섶의 당숙모를 닮은 백양목 한그루가 삭풍에 떨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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