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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집이 되다 / 이미영

집이 되다 / 이미영

 

 

 

금방 여기가 더 편해질 거라는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아버지는 마주잡았던 손을 풀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허공을 훠이훠이 저어 들어가라고 말하는 손짓에 한껏 차려입은 새색시는 한데로 쫓겨나는 듯 막막했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혼자 내버려두고 돌아가는 아버지가 슬펐다. 이 장면은 한참을 아스라한 기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었다.

신행길을 나서던 날 아침은 몸에 익지 않은 한복차림 때문에, 북적거리는 친지들 때문에 마음을 챙기지 못했다.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아버지가 떠난 시집은 황량했다. 아직은 내 집 같지 않은 곳에서 자기 식구들과 웃고 떠드는 신랑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멀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했던 말씀처럼 금방 편해지지 않았다. 쉽게 서글퍼지고 자주 외로웠다. 틈만 생기면 집 생각이 났다. 엄마가 끓여 주는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동생들과 이불 밑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지던 시간이 자꾸 가슴으로 차 들었다.

이들이 중간고사를 마치면 집에 내려온단다. 가까스로 기차표를 예매했다는 목소리에서 그리움이 묻어났다. 아들은 집에 있는 동안 맘껏 널브러져 지냈다. 늘어지게 자다가 아침 삼아 점심을 먹는다. 거실 의자에 몸을 파묻어 텔레비전을 보다가 다시 잠에 빠지고 일없이 어슬렁거리다 저녁을 비운다. 아기처럼 먹고 자고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보낸다. 서너 달을 그러구러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간다.

상경 길의 녀석은 말이 없어도 온몸으로 가기 싫은데라며 외치는 것 같다. 올라간 첫날밤에는 종종 젖은 말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온다. 책상과 침대, 옷장이 나란히 놓인 한 뼘 기숙사는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은 공간일 게다. 방문 앞에 붙은 기숙사 이름표는 나란히 정답지만, 제각각 나갔다가 옆자리가 언제 돌아오는지 관심도 두지 않고 잠을 청한다. 같은 방 안에 짐을 부리고 지낼 뿐 어울려 살지 않는다.

나는 오래전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집이 되어 있었다. 익숙한 냄새를 풍기며 주문하지 않아도 입맛 당기는 밥상이 알아서 나오고 마음이 놓여 절로 잠이 쏟아지는 그런 터가 되었다. 신행길에서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가고 싶었던 그런 곳이 되었다. 집은 사는 이들의 공간보다는 떠나간 사람들의 그리움의 대상일 때 의미가 짙어진다.

독립군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투 속에서 생명의 빛이 꺼져 가는 동지를 안전지대로 잡아끌면서 하는 말은 정신 차려, 집에 가자.”였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집을 향해 독립군 용사는 홀로 돌아가고 있었다. 몸은 이역만리를 떠나지 못한 채 혼령만 고향 마을 고샅길을 들어섰을 것이다. 그 집이라는 한 마디에는 온갖 의미가 담겼지 싶다. 떠나올 때 아내의 뱃속에서 발길질하던 자식이 마루를 엉금엉금 기어 다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서렸다. 손자의 재롱에 박수를 치다가도 먼 산 위로 걸린 아들의 얼굴에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가 담겼다. 땀에 전 치마저고리로 하마나 남편이 돌아올까 학수고대하는 아내도 들었겠다. 숨져 가는 독립군의 초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향불 같은 연기가 가난하게 피어 올랐다. 내 눈에는 그가 돌아가지 못한 집 때문에 뜨끈한 물기가 젖어들었다. 목숨을 바쳐야 지켜지는 보금자리라서 눈물이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그가 지킨 집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관객들도 목이 메었다.

초가삼간의 식솔들을 뒤로하고 만주 벌판에서 숨져 간 독립군 용사의 영면은 평안할 것이다. 나라라는 큰 울타리를 위해 희생하였으니 말이다. 미래의 든든한 집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주었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을 우리는 눈물로 환송했다.

친정아버지는 몰래 천년 집을 장만했다. 장차 당신이 누울 자리도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으려고 마련하신 모양이다. 장마가 지나면 쓸려간 곳은 없는지, 봄이 오면 잡초로 뒤덮이지 않았는지 살피러 다녔다고 한다. 큰 병을 얻고 나서는 하는 수 없이 우리에게 집터를 일러주었다. 형부는 어쩌다 짬을 내어 손질하는 모양이었지만, 나에게 빈 묏자리는 눈에 담기도 꺼림칙해서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아직은 우리 옆에 계시니 가묘 따위는 치워버리라고 역정만 보탰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면 자주 못 와도 생각나면 한 번씩 보러 오란다. 고향집 근처라서 쉬기에는 그만일 거라고 했다. 장차 손자들의 아이들과 소풍이라도 오면 좋을 거라고 웃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 신행길에서 여기가 더 편해질 거라던 말이 겹쳐진다. 이제 아버지의 여기는 거기가 되는 중인가.

세상에서 혼자인 듯 막막하던 시집이, 퍼질러 앉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꾸벅꾸벅 조는 곳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친정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다. 엄마만 바라보던 아이들이 자라고 곁을 떠나면서 내가 집이 되어 간다는 걸 천천히 깨닫는다. 무모님이 계시던 곳에서 내 식구가 사는 곳으로 다시 아들이 자러 오고 싶은 장소로 속뜻이 바뀌어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는 일은 여기를 따라 이사를 하는 일인가 싶다. 집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집이 되었다가 영원의 쉼터마저 소풍으로 내어 주고 싶은 집으로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