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적돌기 / 박순태
뭇 생명체는 처해진 환경을 감당해 내면서 살아간다. 거대한 생존의 경쟁 터에서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능력을 평가 받을 만하다.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존능력으로는 거미가 으뜸일 것이다. 거미는 곤충과는 달리 날개가 없어 생활반경이 좁다. 다른 동물들의 눈에도 잘 띄어 먹이 구하기도 어렵다. 거미는 그런 자신의 약점을 줄로 극복한다. 거미에게는 방적돌기라는 기관이 있다. 꾸물꾸물 기면서 모를 내는 이앙기처럼, 방적돌기에서 뿜어내는 점액으로 줄을 치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그 점액이 거미줄이 되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쌀가루가 엉겨서 가래떡이 되어 나오는 듯하다.
거미가 줄로써 집을 짓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날개가 없는 탓으로 지혜를 발휘해서 양쪽 두 나무 사이에 거미줄을 친다. 한쪽 나뭇가지에 앉아서 줄을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계속 날린다. 그 줄이 바람을 타고 건너편 나뭇가지에 걸리게 된다. 그러고 나서 앉아 있는 쪽의 줄을 고정시키고 바람에 날려 건너편 나무에 걸린 줄을 타고, 새로운 줄을 뽑아내면서 가고 오고를 반복하여 윗줄을 탄탄하게 완성한다.
이번에는 곡예사가 된다. 완성된 윗줄 중앙에 새로운 줄을 고정시키면서 아래로 줄을 늘어뜨린다. 그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그네를 타듯이 하여 나뭇가지에 몸이 닿으면 그곳에 줄이 고정된다. 이런 방식으로 양쪽 나무에 기초를 탄탄히 한 다음 중앙에서부터 그물 형식으로 줄을 친다. 사람들이 기중기를 사용하게 된 연유도 아마 거미를 보고 영감을 얻었으리라 싶다.
거미는 곤충이 갖고 있는 날개가 없는 대신 다리 한 쌍이 더 많다. 거미줄을 치는 장면을 보노라면 네 쌍의 다리가 큰 역할을 한다. 몸체에 비하면 유별나게 다리가 길다. 그 긴 다리를 쭉쭉 뻗어가면서 줄을 잡아 딛고 집을 짓는다. 만약 다리가 짧다면 줄 사이의 간격이 떠서 애로가 많을 것이다. 내겐 거미가 방적돌기에서 나오는 점액으로 거미줄을 만들어, 특이한 방법으로 집짓기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이 있다.
아버지의 형제 중 열 번째로 태어난 곱사등이 삼촌은 마치 거미가 방적돌기를 돌리는 것처럼 살아온 인생이다. 삼촌은 열 살 되던 해 가을 나뭇짐을 지고 오신 할아버지께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게를 부리는 순간 그 밑에 깔려버렸다. 그렇게 하여 등뼈가 부러진 곱사등이가 되고 말았다. 삼촌이 발버둥 치면서 토해내는 울음소리를 따라 식구들의 한숨소리는 늘어갔다.
할머니는 상처 부위에 느릅나무 껍질을 붙이고, 비단개구리의 가루를 두꺼비 기름에 버무려 화산 구덩이처럼 파인 등에 바르곤 했다. 그때마다 삼촌은 진땀을 흘리고 혀를 깨물며 따가움을 참아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삼촌은 식구들의 정성을 받아 명줄을 잇게 되었다.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평생 불구의 몸이 된 삼촌은 국립재활원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거미가 방적돌기로 쉬지 않고 줄을 치듯, 삼촌은 근면 성실로 편하고 질기며 모양 좋은 구두를 만들었다. 가게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아지자 삶의 꽃망울도 자연스럽게 맺혔다. 하느님도 감동했는지 천사 같은 짝도 나타났다.
삼촌은 마치 거미가 줄을 내듯 방적돌기를 돌리고 계셨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람 냄새를 골고루 느끼게 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이 몰려왔을 때도 삼촌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아니, 빚쟁이들의 마음을 줄로 꽁꽁 묶어놓았다.
“이자는 드리지 못해도 원금은 제가 갚아 드리겠습니다.”
삼촌의 말에 빚쟁이들은 마음이 녹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을 돈이 허리춤만 한 키에다 등에는 튀어나온 혹을 달고, 눈물겹도록 모은 것이란 걸 마음으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흔들려 몇몇은 원금을 줄여서 받아가는 이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자 나는 절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그때 평생 절밥에 의존해야 할 팔자를 면해준 분도 삼촌이었다. 삼촌은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그 덕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었으니 나의 오늘은 순전히 삼촌의 은공인 셈이다.
중학교 다닐 때였다. 학부모 회의가 있는 날 내심으로 숙모님이 오시길 원했는데 삼촌이 오셨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삼촌의 큰 사랑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남의 눈만 의식했다. 모든 시선이 온통 자그마한 꼽추 삼촌에게로 집중되는 것 같았다. 어찌 그렇게 소갈머리가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푸른 제복의 사명을 받고 최전방 철책 부대에서 근무할 때였다. 휴가증을 가슴에 안고 고향에 왔으나 마음은 무거웠다. 이곳저곳을 다녀 봐도 여비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삼촌은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비까지 두둑하게 주셨다. 삼촌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언젠가 가까운 친척들과 노래연습장에 갔을 때였다. 모두들 노래에 흥이 나 있는데, 삼촌은 호주머니에서 손톱깎이를 꺼내더니 탁자 위의 나사못을 죄고 있었다. 거미가 방적돌기를 놀리지 않는 것처럼, 삼촌은 그 순간에도 마음속의 방적돌기를 굴렸던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들꽃이 시선을 빼앗듯 삼촌은 작은 행동 하나로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인생의 말미에 접어든 삼촌의 결실을 더듬어 본다. 삼촌의 우수한 인품과 친화력을 이어받고 태어난 세 명의 사촌 동생들도 사회생활에서 으뜸으로 통한다. 그들은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땀을 닦느라 바쁘다.
거미는 방적돌기 하나를 활용하여 험난한 생태계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삼촌은 불편한 몸을 끌면서도 혼과 혼이 마주치도록 하는 마음속의 방적돌기의 힘을 몸소 보여주셨다. 신체적으로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각오로 삶을 펼칠 수 있다는 힘의 원천이 되는가 싶다. 그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혜를 발휘하게 되니 말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튼튼하게 줄을 치고 있는 거미를 본다. 오늘따라 왠지 유별나게 보인 거미줄에 삼촌의 한 생애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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