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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황홀한 공포 / 염정임

황홀한 공포 / 염정임  

 

 

 

늙어가면서 가장 두려운 게 치매에 걸리는 거라고들 한다. 노인들이 늘어 가고 있는 요즈음 치매라는 말은 일상어로 흔히 쓰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치매를 무슨 역병이나, 재앙, 혹은 불행의 대명사로 쓰기도 한다.

어느 날, 가까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였다. 한 사람이 그대들, 다시 한 생을 산다면 그 때도 지금의 남편과 살고 싶어?” 하고 물었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신 치매에 걸렸어?” 하며 그런 질문 자체마저 강하게 부인했다. 요즈음은 당신 미쳤어?” 보다 당신 치매 걸렸어?”가 훨씬 강도 높은 비난이나 부정의 표현이다. 누군가 연로한 사람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나 자신도 저 분이 치매에 걸렸나?’ 하는 생각을 한다.

치매에 걸리는 것과 암에 걸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면 암을 선택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누가 치매에 걸렸다고 하면 우리는 암에 걸렸다는 경우보다 더 동정적이 된다. 그러나 남들은 치매를 끔찍하게 여기지만 그 당사자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상태일 것이다. 그 세계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혼의 깊숙한 곳을 화려한 만화경처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억눌려 왔던 무의식의 세계가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와 자유로운 일탈을 유도하는 것일 게다.

얼마 전에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날 나는 오래된 편지를 읽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편지 속의 그 때로 돌아간 듯 현재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현재의 나를 망각하고 무의식의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가 존재의 근원에 도달한 것 같은 참으로 당혹스러우면서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나는 외람되게도 이 체험이 보르헤스가 경험한 시간 체험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수도자들이 도달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나, 성령의 임재 같은 초월적인 순간이 나에게 왔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어이없는 착각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평소와 달라진 것 없이, 불안하고 의혹에 찬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고 있으므로. 그것이 어떤 종교적인 합일의 순간이었다면 적어도 이 세상사가 환한 아우라로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제야 하는 혹시 그 때에 치매라는 불청객이 나에게 살짝 왔다 가지 않았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꼬불꼬불하고 미로 같이 생긴 나의 뇌 어느 부분이 막다른 골목이 되어 내가 시간의 길을 잃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날 이후 치매라는 말은 나에게 생소하고 두렵기 보다는 신비하고 정감 있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치매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인연의 그물에서 벗어나, 체면치레나 가식의 허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훨훨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너그러운 증상이다. 그래서 그 질병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는 인간을 문명의 모든 옷을 벗어 던진, 오지의 원주민 같은 천진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늙어간다는 것은 필름을 되돌리듯이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다 어느 순간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겐가 치매가 오면 그는 어린아이들의 그 천의무봉한 무구함과 예측불가한 당돌함을 다시 회복하여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망각으로 인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식탐을 하고, 옷에다 실수를 하기도 한다.

성경에도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치매를 그렇게 공포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그에게 사로잡힌 영혼은 어린 시절처럼 마음껏 들판을 뛰어다며, 구름을 따라 하늘까지 이르는 것이다.

치매는 모노드라마이다. 구비 구비 삶의 뒤안길에서 만나야 했던 서러운 사연을 되풀이 말하게 한다. 그리고 치매는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의 한판, 신원굿이다. 그는 평생의 한이나 응어리 진 사연을 주절주절 읊게 하여 상처를 치유시킨다. 치매는 먼 우주의 끝, 천상에서 오는 신호이다. 늙어가면서 맞이하는 다른 변화들처럼 인젠가는 나에게도 그 신호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그 때에는? 나는 그를 말없이 고이 맞아 드리올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