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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봄동 / 양희용

봄동 / 양희용

 

 

     

몇 년 전 1, 청산도에 간 적이 있다. 청산도는 완도에서 뱃길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슬로길'을 둘러보고 싶었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청산도가 나를 놓아주지 않으면 하룻밤을 더 묵으면 된다.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왔다가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청산도靑山島. 이름 그대로 늘 푸른 섬이다. 신비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춰있었다. 1970년대까지 청산도의 '고등어와 삼치 파시波市'는 연평도의 '조기 파시' 못지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화려한 축제를 끝낸 무대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3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이번에는 청산도의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섬 주민들의 삶은 고달프다. 다도해의 다른 섬에서는 양식을 많이 하지만 이곳은 풍랑이 심해 바다 농사를 짓기 어렵다. 그만큼 청산도는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청산도를 일주하는 순환 버스를 탔다. 출렁이는 바다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꼬불꼬불 굽이진 길로 들어섰다. '슬로길'이란 표지판을 보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빤작거리고 있는 거대한 녹색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산과 바다의 영역을 구분 짓고 있는 봄동밭이었다. 하나같이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 땅바닥에 풀빛 유화물감을 칠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밭두렁에 앉아 봄동밭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봄동은 매서운 추위와 척박한 토지가 만들어낸 소생所生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봄동은 [-]이 아니라 [-]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발음으로 미루어 '봄동''봄똥'에서 유래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봄 들녘에 납작 붙어 소똥처럼 자라는 푸성귀를 사람들은 '봄똥'이라 불렀다. 그렇지만 먹는 음식에 ''이라고 적기가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음은 [-]으로 하면서 쓸 때는 '봄동'으로 적었다고 한다. 유래가 서민적이기도 하면서 발음에서는 시골 냄새가 난다.

건너편 밭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을 빼고 돌아보니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지를 걱정하며 내려갔다. 아주머니 네 분과 아저씨 두 분이 봄동을 뽑다가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나를 부르던 아저씨가 나에게 공간을 내어주면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권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산에서 여행을 왔다고 간단하게 소개했다. 마침 배가 촐촐하던 차여서 방금 뜯어 무친 봄동 겉절이를 보는 순간 체면이나 염치는 달아나버렸다. 봄동과 굴무침, 거기다 봄동을 넣고 끓인 된장과 두부김치, 그리고 막걸리. '구상' 선생의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는 시구가 생각났다.

막걸리를 한 잔 마신 아저씨는 굴무침을 봄동에 싸 먹으면서 말했다. 겉잎이 속잎을 싸면서 자라는 일반 배추를 결구結球배추라하고, 봄동처럼 속잎을 싸지 않는 배추를 불결구배추라 한다. 일반 배추를 겨울에 심어 노지에 그냥 두면 봄동이 될 수도 있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하려면 불결구배추 품종을 따로 심는다. 우리나라의 봄동은 주로 남해안에서 재배된다. 겨울의 따뜻한 바닷물이 기온을 올려주고 밭으로 올라온 해무는 봄동의 단맛을 더해준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재배되는 봄동이 달고 맛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맛있게 밥을 먹는 내 모습을 보던 한 아주머니가 "밥값은 하고 가야지요."라는 농담을 했고,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봄동을 뽑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외바퀴 손수레에 봄동을 실어 상자 작업하는 곳까지 옮기는 일이었다. 손수레를 끄는 요령을 배웠지만 처음 몇 번은 쓰러트렸다. 재미는 잠시였고 시간이 갈수록 힘들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쉬운 일도 없다.

일을 하면서 '왜 봄동은 하늘로 치솟지 않고 땅바닥으로만 기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봄동이 '너도 그렇게 살지 않았냐.'고 답해주는 듯하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가난에 쪼들리던 학창시절부터 생긴 습관이 성격으로 형성되었다. 친구 하나라도 더 사귀기 위해, 맛있는 음식 하나 더 얻어먹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낮은 자세로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다했다. 내 주장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군을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성격은 많이 달라졌지만 눈치는 아직도 남아있다. 봄동도 어지러운 세상에 애써 살아남기 위해 낮은 포복으로 눈치를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동의 삶은 겨울철 별미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생으로 먹든, 버무려 먹든, 된장찌개에 넣어 먹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저 먹히는 것이다. 운명을 거슬리며 꽃대를 뽑아 올려 노란 꽃을 피우는 호강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봄철이 올 때까지 한세상 살다 가기를 원한다. 나도 꽃대를 뽑아 올리려는 쓸데없는 욕심보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완도로 향하는 마지막 여객선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봄동을 가득 실은 트럭이 출발했다. 마치 내가 봄동 농사를 지어 도시로 내보내는 것처럼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경운기를 타고 아저씨 집으로 갔다. 1박을 하면서 아저씨의 신세타령과 청산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얻어먹고 다시 순환 버스를 탔다. 청산도의 풍경도 좋았지만 봄동처럼 나그네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주민들의 푸르른 인심은 여행의 또 다른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 식당에서 봄동이 나오면 혹시 청산도에서 온 것은 아닌지 앞뒤를 뚫어지게 살펴본다. 청산도 봄동을 구별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