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한 가지 새겨 넣고 / 조한숙
나에게는 이렇다 할 애장품이 없다. 주변에 두고 애지중지 아끼는 소장품이 별로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을 쭉 훑어보면 놓여있는 물건마다 한결같이 소중한 듯 보이기도 하고, 또 한 번 쭉 둘러보면 모두 버렸으면 싶기도 하다.
10여 년 전 만해도 애장품이라고 여겨지던 물건들이 꽤 있었다. 마음이 가고 눈에 띄는 것은 집으로 끌어 들였고, 이런저런 충분한 이유로 그것들은 곧 내 애장품이 되어버리곤 했다.
인사동 골동품상에서 사 들인 백자 항아리, 경주 어느 오래된 골목 안 상점에서 사 온 잿빛 물동이, 여행지에서 누가 사다 준 방울 달린 티스푼, 시어른께서 쓰다가 주신 청자 빛 큰 대접, 이런 것들을 모아놓고 들여다보고 눈 맞춤하고 즐거워했다. 놀러오는 이웃들에게 자랑도 했다.
이제는 싫증이 나서 그런지 마음이 무심해져서 그런지 그 물건이 그 물건 같고, 그것들은 이제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처럼 조용해졌다.
누구에게나 애장품은 있기 마련이다. 어린이들도 아끼는 물건이 있다. 그들에게 장난감은 목숨처럼 소중해서 머리맡에 두는 것도 마음이 안 놓여 꼭 쥐고 잔다. 뺏어서 잘 두려고 하면 놀라서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난다.
조선시대 문장가 이덕무는 <맹자> 일곱 편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제일 좋은 것이라 했다. 그는 며칠을 굶다 못해 그 책을 팔아 밥을 배불리 먹었다며 가슴 아픈 소리를 했다.
나에게도 구태여 찾아보라면 소장품 한 점이야 없겠는가.
거기에는 20여년의 소장사(所藏史)가 있다. 그 물건을 받고서 처음 몇 년은 어렵게 모셨고, 바쁘게 살 때는 한 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두었다가 작년에 새 집으로 이사 온 뒤로는 먼지 잘 닦아서 거실의 진열장 맨 위층에 올려놓았다.
내 삶을 거슬러 올라가 30여 년 전 새댁 시절부터 소장사가 시작된다.
시아버님이 기거하시는 방에 어쩌다 들어가면 야트막한 책꽂이 한쪽 구석에 주먹만 한 낙관이 세 개 있었다. 그 낙관이 어떤 연유로 거기에 와 있는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고 아버님도 그것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셨다.
어느 날 아버님 방의 책꽂이를 옮기면서 낙관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선 내 마음을 끈 것은 자주색과 검은색의 운치 있는 조화였다. 더욱 마음을 붙잡는 것은 낙관석 윗부분에 새겨진 만개한 매화 한 가지와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예닐곱 개의 봉오리였다. 그 돌을 한 손으로 잡기에는 큰 듯 했으나 손 안으로 감겨들어왔다. 바닥에는 동암(東菴)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었다. 낙관을 지녔던 분의 멋스러움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낙관의 주인은 아버님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아버님은 약학과 출신인데다가 붓글씨와는 인연이 없으시다.
그 후 아이들 키우느라 분주해서 낙관의 주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후에 들은 바로는 동암이라는 호를 지닌 분은 아버님의 아버지, 아이들의 증조할아버지 되는 분이셨다. 그분이 서예를 하시며 누르던 낙관이었다.
동암 할아버지는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 초기에 살다 간 분으로 붓글씨에 조예가 깊으셨던 것 같다. 작품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수상을 하셨다고 하고 민화에도 관심이 각별해서 한 자루를 모아두실 정도였으며 추사 김정희와 흥선 대원군의 작품도 소장하셨다고 했다. 그 귀한 그림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후손들에게는 전설처럼 남아있을 뿐인데 육이오 동란과 함께 없어진 듯 했다. 동암 할아버지의 작품 한 점이 내게로 오는 날, 인사동으로 달려가 표구를 해서 지금까지 걸어 두고 있다.
어느 해 겨울, 아버님이 방을 비우시는 날이 한 달 여 있었다. 겨울철 눈길에 나가셨다가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 해에 시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집이 텅 빈 듯하다고 했더니 시댁의 작은아버님이 오셔서 아버님 방에 한 달 여 기거 하셨다. 아버님이 퇴원하시고 며칠 후 방으로 찾아뵈었을 때, 낙관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은 그것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즈음 나는 뒤늦은 공부를 한다고 힘들 때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 나는 대학원 공부를 시작 했다. 공부가 힘들수록 도서관에 드나드는 횟수가 많아졌고 살림보다 책 보는 것을 가까이 했다. 아버님은 며느리의 뒤늦은 공부를 못 마땅히 여기셨다. 아이들 안 키우고 웬 공부냐고 역정을 내셨다고 들었다. 평생을 대학 강단에 섰던 분이니 말리는 이유가 분명 하셨을 것이다.
어느 봄날, 힘들게 공부를 마치고 졸업장을 들고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뜻밖에도 아버님이 기뻐하셨다. 다음 날 아침, 아버님이 우리 집을 찾아 오셨다. 아버님은 들고 오신 낙관 한 점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그동안 수고했다, 축하 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이내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날 저녁 축하주는 혼자 드셨다고 했다.
그 시절 우리 집과 아버님 집은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서 몇 집 걸러 살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살고 있어도 아버님은 여간해서 우리 집에 오시지 않던 분이다.
동암 할아버지의 낙관 한 점이 내게 주신 아버님의 졸업 선물이었다. 어느 선물하고도 견줄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그것은 내가 아끼는 소장품이 되었다. 내 소유라기보다 대대로 전해야하는 우리 집의 소장품이 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옆 자리에 낙관이 와 있다.
오른 손으로 꼬옥 잡아본다. 양각으로 새겨진 만개한 매화 세 송이가 손바닥에 느껴진다. 세월의 수택에도 매화는 만개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명함 / 정근식 (0) | 2020.01.17 |
---|---|
[좋은수필]고소공포증 / 이종화 (0) | 2020.01.16 |
[좋은수필]툭툭툭 쿵쿵쿵 / 우종률 (0) | 2020.01.14 |
[좋은수필]봄동 / 양희용 (0) | 2020.01.13 |
[좋은수필]봉창 / 류영택 (0) | 202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