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상 건너기 / 민명자
짧은 시 한 편을 만났다. 그런데 이 시가 나를 붙든다. 우주의 이치가 담겼다.
연못 속 개구리 와르르 울고
연못 가 창포꽃 화르르 지고
― 이채형, 「한 세상」 전문
단 두 행의 시이다. ‘우주의 이치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시인의 의도를 읽는 건 ‘의도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류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창조적 오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적어도 독자로서의 내가 읽는 이 시에 대하여.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둘레가 꽤 넓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가에는 나이가 백 년은 더된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둥치가 어찌나 굵은지, 나뭇가지에 크고 든든한 그네가 매었어도 끄떡없었다. 연꽃 핀 연못을 들여다보거나 연못가를 거니는 사람들,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그네를 타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연못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맑은 물과 흐린 물이 함께 어우러져 물고기와 수초를 키우는 연못은 어머니 가슴과도 같았다. 좀 더 철이 들어 그곳을 떠날 때쯤엔 우리 사는 세상이 연못 같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그때도 연못에서 개구리는 울고 창포꽃은 졌다. 그런데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우주의 이치’가 읽히는 건 나이 탓일까? 시행이 보여주는 그대로 자연풍경을 음미하며, 소요(騷擾)와 정적이 있는 연못의 정경을 그려보는 것도 맛이 있겠지만, 이 시의 두 행과 각각의 시어들이 절묘하게 대(對)를 이루며 상념을 일으킨다.
우선, ‘연못 속, 연못 가’가 마음을 잡는다. 연못에서 심연(深淵)과 심연(心淵)의 심상이 읽혀서다. 물은 만물을 키운다. ‘깊은 연못[深淵]’은 그 모성적 품으로 뭇 생명을 품는다. 우리의 ‘마음 연못[心淵]’도 그러하다. 생명의 본체인 인간의 몸, 그 소우주에는 사단칠정의 마음이 산다. 어느 날은 와글와글 끓고 어느 날은 고요하다. 이러한 심적 존재들이 모여 사는 우주 또한 다양한 양태의 삶을 품는 ‘거대한 연못’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진흙 속에서 고고하게 피어나는 연꽃 같은 삶도 있고 잡초 같은 삶도 있다. 부평초처럼 물에 떠서 바람결에 흔들리며 살거나, 물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거나, 혼탁한 물에서 유유자적 유영하는 어족처럼 생의 물결을 헤쳐 나가는 인생도 있다. 우리는 또한 무리들의 둥근 테두리 어딘가에 속해 있거나 밀려나 있는 자로서, 인사이더나 아웃사이더로서, 혹은 중심이나 주변의 경계에서 서성이며 생을 이어간다. ‘속’ 혹은 ‘가’의 은유와 함께 읽히는 우리의 생이다.
이번엔 ‘개구리, 창포꽃’이 눈길을 끈다. 개구리가 남성적이라면 창포꽃은 여성적 이미지를 지닌다. 이들에게서 동물성과 식물성, 동(動)과 정(靜), 양과 음, 생명의 힘찬 도약과 내적 관조, 들끓는 욕망의 분출과 침잠의 적요가 읽힌다. 그 양가적 힘은 어느 한 쪽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샴쌍둥이처럼 공존하고 때로 상충하면서 우리 삶을 이끈다.
시인은 ‘개구리’에는 ‘와르르’를, 창포꽃에는 ‘화르르’를 접목시킨다. 와르르, 살아 움직이며 솟구치는 생명의 형상이다. 화르르, 소리 없이 지는 소멸의 형상이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대비가 생의 이치를 전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소리의 세계에 머물고, 사라지는 것들은 침묵의 세계에 머문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생과 사의 경계에 소리가 있다. 하여, ‘와르르’는 ‘울고’와 만나고, ‘화르르’는 ‘지고’와 만난다. 우는 것은 살아있음이요, 지는 것은 소리 잃음이다. 이쪽, 우리 사는 세상은 늘 와글와글 시끄럽다. 저쪽, 유계(幽界)엔 소리 없이 지는 영혼들이 있다.
일면 하이쿠 같기도 하고 미니멀리즘 시 같기도 하다. 전자든 후자든, 짧은 시행에 깊은 철학을 담는다는 점에선 닮았다. 소설가 이채형이 선보인 처녀시집 『나비문신을 한 사람』에는 고희기념시집답게 7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의 한 편인 이 시에서 시인의 인생철학과 존재들의 생멸 이치를 읽는다.
시 「수련」에서 보여주는 사유도 이와 상통한다.
연못에 물이 잦아드니
그대 목이 긴 걸 알겠네
― 이채형, 「수련」 전문
물이 잦아들어야 비로소 그 연못의 깊이를 알 수 있듯 어떤 세계든 그 안에 침잠해 있을 때는 전체를 보기가 어렵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긴 시간 지나보아야 비로소 생이란 무엇인지 알만하다.
한 세상 건너는 것, 별 거 아니다. 와르르 울다가 화르르 지는 것, 희로애락의 유동(流動) 속에서 와글와글 소리 지르다가 피안의 저편으로 꽃잎 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 연못 물 잦아들 듯이 한 목숨 잦아들 때에야 비로소 길고도 길었던 한 세상 살아온 길 겨우 보이는 것, 그런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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