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떨켜離層 / 노덕경

떨켜離層 / 노덕경

 

 

 

수목원을 찾았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잎을 버리고 서 있었다. 잎을 버린 나무의 모습이 홀가분하게 보였다. 지난 주말에 왔을 때엔 울긋불긋 고운 옷을 차려입고 반기더니 그 모습은 간곳이 없다.

나무들은 이른 봄 새 잎을 틔우고, 여름에는 열심히 키를 키우고, 가을이면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잎들은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고 땅으로 떨어진다. 다시 오는 봄을 마중하기 위함이요, 자연의 이치理致이다.

나무에는 떨켜라는 세포층이 있다. 그것은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에 생기는 특수한 층을 말한다. 가지와 잎, , 과일의 꼭지가 쉽게 분리되는 것이 떨켜로 인한 것이다. 떨켜의 발달에는 옥신’, ‘에틸렌, 아브시스산의 농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생성된 떨켜는 나무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나쁜 미생물의 침입을 막기도 하지만 떨켜離層를 만드는 목적은 잎이나 열매를 떠나보내기 위한 것이다. 겨울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잎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떨켜離層가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름의 매듭을 짓는 행위이다.

단풍은 나뭇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이나 아미노산이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고 잎에 축적되어 색소로 변한다. 녹색을 띠는 색소는 클로 로렌이 분해하여 붉은색의 안토시안이 형성되어 빨간 단풍잎으로 변하고, 갈색 단풍잎은 탄닌성 물질에 의해 나타나고, 노란 단풍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카로티노이드색소에 의해 나타난다.

수목원의 많은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유독 참나무는 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참나무는 떨켜 층이 없어서 마른 잎을 매달고 겨울을 지낸다고 한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참나무는 겨울의 모진 바람이 불어 마른 잎이 떨어질 때까지 바스락거린다. 그것만인가. 늦게 떨어진 잎들이 서리와 결합하여 등산객들의 낙상까지 부른다.

참나무를 보며 가깝게 지내는 후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산아제한 정책 세대라 정부 시책에 동조하여 남매를 낳았다. 정성을 다해 키웠고, 맏딸은 성장하여 은행에 취업하여 맞벌이를 했다. 직장 때문에 아이들 양육을 맡기는 바람에 이웃에 아파트를 얻어 외손자 둘을 키우고 살림까지 살아 주었다.

그러구러 아들도 성장하여 공무원 되었는데 교직에 몸담고 있는 며느리를 보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젊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며 손자들을 맡겼다. 외손주도 봐주었는데, 친손주를 마다할 수 없었다. 두 집의 손주 양육을 12년이나, 거기다 살림까지 도맡아 했다. 덕택에 그의 아내는 꼼짝달싹도 못했다. 친정 왕래는 물론, 동창도,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그 손자들을 다 키우고 나니, 허리와 관절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애들 돌보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아침에는 늦잠 자는 애들을 깨워, 씻기고 머리 빗어 주고 아침 챙겨 먹이고, 가방 챙겨 학원 차에 데려다 주어야 했다. 오후에는 집으로 데리고 와 간식 만들어 쥐야 했고, 형제간에 장난한다고 밤늦게 거실에서 뛰어다니면 아래층에서 연락 올까 가슴 졸였다.

후배는, ‘당신 만나서 손자들 보느라 죽겠다!’는 아내의 넋두리가 듣기 싫어, 동네 어귀 술집에서 시간 보내다 취해서 귀가했다. 그러다 보니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아, 요즘은 집 밖에 나갈 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치매 걸린 후배 간병하느라 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로부터 공급받던 탯줄을 끊어야 새로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분신인 자식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사랑한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다해 헌신하며 보살펴 키운다.

서양西洋의 부모들도 자식 사랑은 우리와 매 한가지다. 하지만 사랑의 절반을 감추고 어릴 적부터 훈련시킨다. 집안 청소, 심부름, 잔디 깎기, 알바를 해서라도 스스로 의주를 해결토록 자립심을 길러 세상에 내보낸다.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사랑에 눈물겹다. 어린아이 때는 온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것은 기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해도 못살까 노파심에서 온갖 지원을 다한다. 그것만인가. 반찬까지 만들어 주고 손자들 양육까지 해준다. 그러한 과잉 사랑을 자녀들은 부모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녀는 나약해지고, 결국에 부모는 등골이 빠지고, 나중에는 서로를 원망하는 사이가 된다.

미물인 식물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떨켜를 만든다. 사람들도 나무처럼 떨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빛바랜 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참나무가 후배처럼 애처롭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