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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봄의 입술 / 서정범

봄의 입술 / 서정범

 

 

 

내가 사는 이웃에는 경희대학교를 품에 안은 꽃과 숲이 울창한 고황산이 있다.

이 산을 매일 아침 오른다. 고황산의 새싹들이 봄을 마시려고 뾰족뾰족 꿈을 깨는 아침이면 우윳빛 안개는 그대로 빨간 수박 속으로 물들어버린다. 입을 크게 벌려 그 수박 속으로 물든 우윳빛 안개를 마시면 봄은 아이스크림의 맛을 입안에 남겨주고 목으로 넘어가 마음의 새싹들을 소롯소롯 트게 한다.

정녕 나의 봄은 고황산의 안개가 실어온다. 봄이라고 하는 말은 보다()라고 하는 동사에서 바뀐 명사다. 어원에서 보면 봄은 만물이 눈을 떠서 보는 계절인 것이다.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 풀들이 해와 달과 별들을 보려고 땅속에서 고사리 손을 들고 나오는 계절이며, 나무와 꽃의 싹과 꽃봉오리들이 눈을 떠서 벌과 나비를 보는 계절인 것이다.

개구리는 흙을 밀치며 툭 튀어 나온 두 눈에 묻은 흙을 봄 아가씨의 치맛자락으로 닦으며 눈을 부빈다. 여자들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의 노래를 부르며 두꺼운 옷들을 훌훌 벗어 버리고 산뜻하게 차려 입은 봄 맵시를 사내들에게 봐 달라는 계절이고, 남자는 꽃의 유혹을 당하여 벌과 나비가 되어 꽃을 보는 계절인 것이다.

봄에 피는 꽃은 잎새보다 꽃봉오리가 먼저 나와서 눈을 뜨려고 하지만 심술궂은 찬바람 때문에 움츠렸다가는 날씨가 좋기만 하면 이제다하고 하루아침에 꽃눈을 뜨는 것이다. 개나리가 그렇고 진달래가 그렇고 목련화 그리고 매화, 할미꽃 등 잎새보다 꽃이 먼저 눈을 뜨는 것이다.

어원에서 보면 봄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계절이지만 요즘 나는 봄을 고황산의 안개의 맛에서 느끼는 것이다.

겨우내 싱싱한 맛을 주던 김치가 군내가 나기 시작하면 그 때는 이미 봄 아가씨는 한강을 건너와서 고황산 마루에서 쉬고 있을 때다. 그래서 고황산의 안개는 봄 아가씨의 부드러운 입김이 서려있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인 것이다. 이렇게 봄 아가씨의 입술을 혀에서 느낄 때, 그 산에 있는 꿩이 쩌렁쩌렁 목청을 돋워 봄을 선언한다.

전에는 식탁에 냉이와 달래들이 온통 시골의 들과 산의 봄을 실어 왔는데 요즘에 온실재배를 하여 겨울에도 식탁에 오르니 나물 맛으로는 봄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두릅나물까지 온실재배를 한다니 맛으로서의 봄이 하나 둘 잃어져 가고 있다.

몇 해 전에 소설을 쓰시는 황순원 선생님과 3월 중순께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에 간 적이 있었다. 아직도 거기엔 흰 눈이 뒤덮여 있었다. 겨울 그대로의 설경이다. 깊은 산속이라 여관의 찬이 별로 없었지만 씀바귀나물이 어디서 났는지 상에 놓여 있었다. 한 젓갈 입에 넣으니 씀바귀나물 이름 그대로 쓴맛이었지만 그 맛에 따르는 것은 봄이 짜르르 혀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씀바귀나물은 아버님이 무척 좋아하셨다. 어렸을 때 마을 계집애들과 밭둑에서 씀바귀 뿌리를 캐던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이북에 계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더 한층 그 맛이 쌉쌀했다.

내가 자란 시골의 봄을, 한 젓갈의 씀바귀나물이 강원도 깊은 산속까지 묻혀 왔던 것이다. 내가 씀바귀나물에서만 젓갈이 자주 가자 황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쓰지 않으냐고 하신다. 쓰기는 썼지만 아버님이 무척 좋아하시던 것이어서 씀바귀나물에서 아버님을 느꼈던 것이다.

아들만 육형제인 우리 집에는 여자라곤 어머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물도 우리 집에서는 사내애들이 캤었다.

씀바귀나물을 많이 캐서 상위에 듬뿍 담겨 있으면 기뻐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구리 동전 하나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 때 구리 동전 하나는 일전인데 눈깔사탕 세 개를 살 수 있었다. 나는 동전을 하나씩 얻는 재미에 봄이면 씀바귀나물을 열심히 캤던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씀바귀나물은 써서 입에 대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쓴 것을 좋아하셨는지 퍽 이상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철이 조금 들기 시작하면서 쓴 것을 좋아하신 아버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아버님은 인생의 쓴 맛을 많이 겪은 분이시었다. 여섯이나 되는 아들을 공부시키느라고 넉넉하지 못 한 살림에 정말로 잡숫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식들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결국 아버님은 씀바귀나물과 같이 쓴 것만 잡수셨다. 그것은 인생의 쓴 맛을 마다 하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즐겨하셨던 것이 아닐까.

며칠 전 갑자기 아침을 먹다가 씀바귀나물 생각이 났다. 아내에게 씀바귀나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쓴 것을 어떻게 먹으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가까운 시장엔 없어 다른 시장까지 가서 사 온 씀바귀나물이 저녁상에 수북이 놓여 있다.

북한에 계신, 팔순이 넘으신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씀바귀나물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한 젓갈 입에 넣었다. 쓰디쓰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쓴 나물에 젓갈이 자꾸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나물이라 신기해서 한 입씩 넣더니 써써하며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다.

오늘 아침도 고황산에 올랐다. 숲 사이에서 꼼을 꾼 맑은 아침 공기를 나긋나긋 씹어 본다. 거기엔 향긋한 솔 맛, 달빛을 타고 내려온 이슬 맛, 꽃들의 달콤한 꿈 맛, 꽃을 피우려는 봄 아가씨의 부드럽고 촉촉한 봄의 입술이 느껴지며 우윳빛 안개의 아이스크림의 맛이 혀를 감친다. 그런데 오늘 따라 뒷맛은 씁쓸하고 쌉쌀한 씀바귀나물의 맛이 혀에 남는다. 어제가 아버님의 생신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