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친구 / 류인혜
서울에 다시 온 1960년대 초반에는 서대문 영천(현저동) 전차 종점 근처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용두동에 사는 고향친구를 만나려 갈 때면 종로통을 통과하여 동대문까지 다니는 전차를 이용했다.
전차가 지나는 광화문의 넓은 사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용두동까지 가지 않을 때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근방에서 놀았다.
많은 나무를 보고 자라난 감성이 자연스럽게 나무들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경복궁의 잘 다듬어진 정원과 덕수궁의 은행나무들을 보거나, 광화문 주변 길을 배회했던 것은 나무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로수가 좋은 그 길은 쉽게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K빌딩이 상자모양으로 광화문 네거리의 한쪽 모서리에 자리 잡았다. 빌딩을 세우고 건물 안에 온실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자 실내의 유리 온실 구경을 하고 싶었다. 로비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일부러 타고 오르내리면서 키가 큰 나무가 심겨진 식물원을 내려다보았다.
건물 밖에도 봄이면 라일락이 만발했다. K빌딩의 라일락 나무는 시골 풍경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는 사람에게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그곳에 가서 나무를 보고 꽃향기를 맡았다. 버스 정류장 부근에 있는 몇 그루의 느티나무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경기도로 이사를 하게 되자 서울을 떠난다는 인사를 하러 광화문으로 갔다. 멀리로 주소를 옮기면 자주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시간을 내었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가니 섭섭해하지 말라 전하고 싶었다. 건물 앞쪽으로 돌아가는 모서리에서 먼저 만난 라일락 무더기에 눈인사를 했다. 나무는 한군데에 모여 한 가족처럼 서로 껴안고 큰 원형을 이루었다. 그렇게 뻗어나가는 가지를 서로 지탱하고 있다.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한솥밥을 먹듯이 외로울 때 정을 나누었던 나무들과 작별을 했다. 이제는 그들과 떨어져 다른 나무를 찾으러 멀리로 가게 되었다고 미안해한다. 광화문에 있는 나무 친구들은 마음의 고향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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