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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책이 사는 집 / 박영란

책이 사는 집 / 박영란

 

 

 

 

도서관은 특별한 곳이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처럼 말이다. 세상의 흐름과 단절되고, 모든 소란으로부터 보호되며, 사람들은 조용히 하려고 노력한다. 휴대폰을 끄고 부산스럽지 않게 행동하며 가벼운 긴장감으로 책에 몰두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심결에 맡아지는 호흡 속으로 책의 묵직한 공기가 말을 건넨다. "여기는 책이 살고 있는 곳이에요"라고, 부산한 움직임을 밀어내고 지긋이 엉덩이를 붙이고 몇 시간 앉아 있으면 나에 대한 긍지와 집중이 자라는 곳이다. 그러다 뜻밖의 책과 작가를 만나는 설렘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라고 알베르토 망구엘은 말하지 않았을까.

도서관에 가는 자식들은 언제나 대견스럽고, 그곳에서 책을 보는 중년들의 모습에는 평화로움이 있다. 서가에 가득 찬 무궁무진한 책들과 사서들의 조심스런 움직임. 그 사이를 흐르는 조용한 정적들. 사실 도서관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문턱 높은 관공서처럼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다. 우선은 편안한 집을 박차고 나가는 데는 누구든 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경사를 걸어 올라가서 그곳 딱딱한 의자에 앉아 그 분위기와 호흡을 맞추자면 힘이 든다. 때론 파릇한 젊은이들 사이에 낀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책에 대한 열망과 재미를 안다면 그 모든 것들은 극복된다. 도서관이 차츰 아늑한 둥지가 되어 갈 때, 새로운 한 세계를 갖게 될지 모른다.

거리에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자'라는 현수막이 아우성치듯 나부낀다. 마치 한 달에 한 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애타게 호소를 하는 것 같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쯤 '도서관에서 놀자'라는 슬로건은 어떨까. 책의 놀이터! 시민들이 책과 노는 도서관의 풍경을 상상해보라. 휴일, 아빠와 아이가 손을 잡고 도서관에 와서 이마를 맞대고 같이 동화책을 보는 모습. 이런 추억은 아이에게 평생 따뜻한 기억이 되리라. 정년을 맞은 듯한 아저씨가 따사로운 창가에 앉아 자신의 거실처럼 편안하게 책을 보고 있다. 의외로 도서관에는 무협지를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뭔가를 탐독하는 아저씨들이 많다. 때론 졸음에 잠긴 한가한 모습도 목격된다. 등산복 차림의 부부가 서가를 돌며 대여섯 권의 책을 빌려 가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도서관에서 놀자고 마음을 먹으면 이곳은 다양한 모습으로, 쾌적한 공간으로 열려 있다. 작은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어린이도서관, 시민도서관, 구립도서관, 대학 도서 등. 이들은 다양한 소속과 운영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목적은 같다. 시민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도서관의 존립 이유는 책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서 독서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도서관은 책만을 모아둔 저장고가 아니다. 평생교육기관이자 복지기관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환경을 갖추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 책을 보는 단순한 공간에서 이제는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전 방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친숙함이 그렇듯이, 도서관을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도서관은 이미 과거의 시스템에서 탈피하였다. 도서관의 구조나 이용 방법, 개가식 열람에서 책을 찾고 대출하는 과정- 이 기초적인 모든 것들이 자동화되고 전산화되었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확인해 두었다가 적절할 때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두면 좋다.

도서관은 '책이 사는 집'이다. 우리 모두의 공동 서재이다. 가끔은 책이 사는 집에 가서 놀아 보자. 영혼이 한 곳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일상의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