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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노을이 내게로 왔다 / 김도우

노을이 내게로 왔다 / 김도우

 

 

 

 

오후가 되면 노을이를 데리고 바닷가에 나간다. 노을이는 가고 싶은 곳이 많은지 앞장서 간다. 밖에만 나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럴 때면 내가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간다.

노을이는 바다냄새를 맡느라 코를 연신 벌름거린다. 바닷가에서 놀던 돌게가 종종걸음을 치고 나오다 호기심 많은 노을이한테 잡혀 바둥거린다. 돌게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 빨간 집게발을 세워 노을이를 위협한다. 노을이의 공격을 피해 잘도 빠져나간다. 돌게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탐색하다 제상대가 아니다 싶었는지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십년감수한 돌게가 풀섶 사이로 줄행랑을 친다. 노을이는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자세를 취하다 갑자기 포복자세를 한다.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가다말고 쪼그려앉기도 한다. 그렇게 설치고 싶어 어떻게 하루 종일 입에 있었는가 싶다.

육 개월 전쯤에 남편과 나는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 옆 나무에 젖도 겨우 떨어졌을까싶은 새끼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절박하게 짖고 있었다. 우리가 아니라도 누군가 데리고 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 돌아왔더니 그때까지 녀석이 온몸을 버둥대며 짖고 있었다. 조그맣고 까만 놈이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며 목도 쉬었다. 남편이 불쌍하다고 데리고 가자고 했을 때, 짐승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니 모른 척 가자고 하였지만 남편은 끝내 고집을 피웠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이 키우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제 노을이는 남편만 보면 바짝 서서 꼬리를 흔들고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지만 내게는 그냥 무덤덤하다. 남편은 노을이가 바짝 구운 생선을 좋아한다고 가끔 내가 먹고 있는 생선까지 들고 간다. 녀석이 심심할까봐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도 데려간다. 밭 일이 끝날 때까지 노을이는 배가 지나가면 짖고, 파도가 철썩거려도 짖으며 논다. 남편은 배추나 무를 리어카에 싣고, 녀석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온다. 그럴 때 노을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노을 덮힌 하늘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노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새끼였던 노을이가 이젠 자란 암컷 성견이 되었다. 새까만 털은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나며 몸매가 날씬하여 무척 날렵하게 보인다. 얼굴은 브이자로 동안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나고 귀는 쫑긋하며 가슴에 하얀 반달무늬가 있다. 사람들이 노을이가 진돗개 중에 흑구라고 하였다.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청결하며 영리한 개라고 하였다. 노을이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배변을 집안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웃사람을 만나도 꼬리만 흔들고 아무 곳에서나 짖지 않는다. 시골에서 부산 올 때도 노을이는 차 뒷 칸에 앉아 이동한다. 노을이가 얌전하게 차자 않자 바깥풍경을 내다보곤 한다. 부산에 있는 집에서도 조용히 있는 것을 보면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노을이의 예전 이름은 무엇이며 집이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좋은 가정에서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염치도 있고 행동도 반듯하여 전 주인에게서 교육을 잘 받은 듯하다. 사람이나 짐승이 헤어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을이는 어쩌면 전 주인에게 버려진 아픔 때문에 새 주인에게 눈치를 보느라 매사를 조심하고 있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시끄럽게 짖거나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또 어디를 갈 때면 맡겨두고 가야하니 그때는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노을이가 철이 든 가난한 집 맏이처럼 우리의 걱정을 헤아리는 듯해서 마음이 짠하다.

하늘과 바다의 잔치에 가끔 노을이가 멍하니 서있다.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노을이가 동물이라는 걸 잠시 잊는다. 윤회를 통하여 개로 태어난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노을이가 사람과 닮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진다. 사람들처럼 동물도 아름다운 기억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노을이와 우리는 전생과 이승을 넘나드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현재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노을이의 맑은 눈빛을 보면 내 마음이 선해지는 것 같다. 변함없이 녀석과 잘살아야 할 텐데 내 몸도 건사하기 귀찮은 나로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노을이를 잘 보살피고 있으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노을이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다. 노을이의 상처를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야 될 것 같다. 이별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노을이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쪽문 너머 보이는 바다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파스텔 물감을 뿌려놓은 듯 황홀했다. 노을이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