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 지던 날 / 김수인
황톳물은 어렸을 적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집 앞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저수지 하나가 있어서 아버지는 큰비만 오면 못 둑이 터질까 걱정이었다. 지금도 홍수가 지는 여름이면 둑 위로 넘실거리는 큰물에 강아지와 돼지들이 휩쓸려가는 모습들이 되살아난다.
냇가 외딴집에서 자라던 내가 고작 여덟 살 때 사라호 태풍이 욌다. 밤새 쏟아지던 큰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치질 않아 들판이 온통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아버지가 늘 염려하시던 못 둑이 터지겠다고 했다. 항상 당당하시던 아버지가 허둥대며 공포에 떨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무서워 안방으로 숨어들었다. 이내 일가친척들이 웅성웅성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고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은 모두 둑에 막아서서 큰기침을 했다.
“으흠 으흠 으흠”
그 헛기침 소리는 거대하게 밀려오는 물의 세력을 연약한 인간의 훈김으로 막아보려는 처절한 항전이었다. 강한 물리침을 뜻하는 그 기침은 옛 선조들의 전례를 따라 할머니가 시킨 것이다. 그러나 용틀임을 치며 밀려드는 물굽이는 인간의 의지를 조롱하듯 마침내 우리 집을 삼키려 했다. 어머니와 집안 숙모들은 동생을 업고 허겁지겁 가재도구를 뒤뜰로 치우기에 바빴고, 아버지는 집안아저씨께 소 두 마리를 대피시켜 달라고 부탁하면서 나도 따라가라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아제의 뒤를 따르던 나는 집과 가족을 물속에 잠겨두고 홀로 떠나는 피난민 같아서 서럽게 울었다.
“아제요 내만 가면 어짜능교.”
그러나 나를 안심시켜 주는 대답은 들리지 않고, 그냥 소고삐만 묵묵히 잡고 가시는 아제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무심하기만 했다. 비에 젖은 새 새끼 모양을 하고 큰집엘 갔더니 초등학교 상급생이던 언니와 오빠만 있었고 어른들은 이미 우리 집으로 가신 뒤였다. 젖은 옷을 입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마구간에 메어있는 우리 소를 보니 더욱 눈물이 났다. 큰집 소의 텃세에 눌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게 측은해서 울었다. 큰집 언니는 훌쩍거리는 나를 어떻게 달랠까 고민하는 듯하더니 부엌에서 물 한 공기를 담아 와서는 이것 먹고 울지 말라고 했다.
그건 밀개떡을 찔 때 넣던 사카린 물이었다. 달작지근한 물이 입안을 적실 땐 울음을 참아야지 했지만 마당에 퍼붓는 세찬 빗줄기를 보자 또 눈물이 났다. 또다시 언니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이번엔 쇠 젓가락을 불에 달구어 와서 머리를 볶아 주마고 했다. 퍼붓는 빗소리에 마음 붙일 곳은 언니뿐이었다. 예쁘게 해준다는 말에 머리를 맡기고 있으니, 코에선 노린내가 나고 귓전에선 열기가 후끈했다. 조금 뒤 언니가 손거울을 보여주며 예쁘다고 치켜 올려주었지만 그 말도 귓전으로 들렸다.
오후가 되어서야 비가 그쳤고 집으로 오라는 기별을 받았다. 가슴 콩닥거리며 뛰어오는 동안 제발 무사하기를 바랐으나 뒷담을 뭉개고 만든 임시 통로가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 앞 둑은 형체도 없고 마당도 반쯤 떠내려간 집이 썰물에 실려 간 갯벌 같았다. 들에서 밀려온 찌꺼기가 마당가에 수북했고 담 사이에 심어진 감나무는 뿌리를 드러낸 채 비스듬히 기울고 있었다. 마루 밑에 숨어있던 털복숭이 강아지들만 축담에서 오글대며 집안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곱슬머리를 하고 나타난 게 미안했으나 아버지는 내 볶은 머리쯤은 보이지도 않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당이 떠내려갈 때 아버지의 가슴도 무너져 내렸을 터인데, 그때 나는 미용실 손님 흉내를 내고 앉아 잠깐 집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연출가였다. 더 큰 수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힘찬 목소리로 가족들을 안심시키자, 이내 부엌에선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소죽솥에서도 피난 갔던 가축을 먹이려고 구수한 김이 뭉글뭉글 처마 끝으로 퍼져 나왔다. 그렇게 용틀임을 치던 황톳물의 기세도 그날 밤은 한풀 꺾여 긴장 속에 있던 우리 가족들은 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일꾼을 데리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석축을 쌓아 올렸고,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고 냇가 모래밭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유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버지는 내 생에 가장 큰 그늘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도 지진의 여파가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데 싱크대가 흔들거리고 거실에 놓인 화분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일순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지자 문득 큰물 지던 날의 아버지 기상이 그리웠다. 그때의 아버지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지만 나는 이이들에게 그런 힘이 되질 못한다. 다만 아직도 든든한 아버지의 가슴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오십여 년 전에 쌓아 올린 석축은 지금도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그 둑에 심어진 개나리넝쿨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건만 아버지는 지하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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