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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골라 보기 / 이혜연

골라 보기 / 이혜연

 

 

 

 

리모트 컨트롤이 분주하다.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다가 다시 보기로 들어가 지난 드라마 제목들을 훑는다. 드라마가 결정되면 회편을 고른 다음 되감기와 빨리 감기를 오가며 구미에 맞는 장면을 고른다. 가끔은 영화 쪽을 그렇게 알짱거리기도 한다.

요즘 내 사는 모양새가 이렇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리모컨을 조종하며 텔레비전 화면과 눈 맞추고 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우세를 절감하고 있다. 마음이 몸을 이기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 몇 조금 가지 않아 눈이 뻑뻑해지면서 글씨가 어른거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자 끼적이노라면 이내 허리에 통증이 오고 다리가 저리다. 몇 번 자판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손가락 관절이란 놈도 아우성을 쳐 파업을 예고한다.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것도 몸이 허락할 때 이야기다. 육십여 성상 동안 비싼 값 치르며 배우고 익혀 차곡차곡 다져놓은 경험이며 지식들도 몸이란 놈이 보내는 신호 한 번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쉬어라!”

과부하過負荷니 포맷하라는 몸의 신호가 떨어지면 하던 일을 멈춰야 하는, ‘얼음땡상태에 들어간다. 얼음땡이 되는 방편 중의 하나가 내게는 ‘TV 보기. 나들이도 맛있는 것 먹기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TV 보기도 몸의 신호를 따른다. 갈등이나, 폭력, 공포, 미스터리 같은 것들은 아웃이다. 심장이 조여 오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극도 금물. 한번 우울해지면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을 일종의 멋으로 즐기던 때가 까마득하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해서-복도 나이를 가려 오는 것 같긴 하지만-, 또 억지로라도 웃으면 건강해진다 해서 가끔 코미디 프로를 클릭해보지만 개그가 나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인지 내가 개그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여간해선 웃음이 나지 않아 열외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맛을 들인 것이 행복한 장면 골라 보기다. 지난 드라마 중 나를 즐겁고 뿌듯하게 했던 장면, 특히 행복한 결말 부근을 되풀이 해 보는 방법이다. 모든 갈등이 사라지는, 오해하고 불행하게 했던 요소들이 사라져 잘못되었던 것들이 제자리를 되찾아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몸이 좋아요!’라는 댓글을 단다.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 영화가 회자된 적이 있다. 죽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기 전 림보라는 중간역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자신의 삶을 더듬어보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나를 선택하여 그 기억만 가지고 떠난다는 스토리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의외로 하찮은 순간들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나 할까.

내 삶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어느 수필가가 기억해낸, ‘동네 빵집에서 버터에 구워 설탕을 솔솔 뿌린 노릇 바삭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던 순간이라든가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편한 옷을 입고 누워서 유키 구라모토의 곡을 들을 때와과 같은, 소소한 행복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을 들어도 슬픔이 무겁게 짓눌러왔고, 노릇 바삭한 토스트를 깨무는 순간에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가올 무거운 일상이 두려웠다. 무지개나 파랑새를 좇아 허겁지겁 살아온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소소한 행복들을 나는 왜 행복으로 인식하기는커녕 기억에조차 없는 것일까?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들은 청춘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지난했던 순간들의 무게가 버거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지 못했던 길을 가본다 한들 욕심, 욕망에 휘둘려 비슷한 과정을 밟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 해피엔딩은 없다. 죽는 순간이 엔딩인 인생은 어떤 일이 해피하게 마무리된 후에도 지지고 볶는 일상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버렸던 것일까. 어쩌면 요즘 나의 ‘TV 골라보기는 내가 느껴본 적 없는, 아니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을 드라마를 통해 맛보고, 현실에서는 실재할 수 없는 해피엔딩을 엔딩이라 착각하며 행복해보고 싶은, 잃어버린 마음 찾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기껍게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