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조현미
트럭 한 대가 들어선다. 윤슬 너울거리는 강을 건너, 마을 어귀로 몸을 틀더니 가풀막을 용케도 거슬러 오른다. 바람이 쪽빛 포장을 들출 대마다 짭짤한 바다 냄새가 흘러나온다.
“자아 생선이 왔습니다. 생선이 왔어요. 펄펄뛰는 고등어, 팔뚝만 한 갈치 들여가세요. 산 넘고 바다가 왔습니다. 어서 나오셔서 싱싱한 생선 들여가세요….”
생선 장수가 짐칸을 열자 왈칵, 비린내가 쏟아진다. 자못 구성진 입담이 질펀하게 촌을 적시고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삼거리가 이내 파시처럼 왁자해진다.
먼 여정에 지쳐 눈이 풀린 동태, 은빛 비단옷의 갈치며 장정 손바닥만 한 병어랑 알배기 주꾸미, 세상 구경 나온 꼬막의 주홍빛 속살…. 생선 장수 말마따나 바다가 통째로 들어온 것 같다. 개중 촌로들의 눈을 끄는 건 꽁치며 고등어 따위의 등 푸른 족속이다. 검은색 봉투 위로 당당히 삐져나온 푸른 느낌표!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들 걸음이 사뭇 가볍다. 묵나물이며 김치에 이골이 난 산촌 사람들, 저녁 밥상이 모처럼 푸근하겠다.
갓 구운 자반과 노란 막걸리, 여닫이문을 넘나드는 취담에 창호지 속 마른 꽃도 덩달아 불콰하다. 잉걸처럼 핀 별과 단풍잎만 한 불빛들, 깡마른 촌의 겨울이 이토록 따뜻할 수가 없다. 저 발그레한 창의 안쪽에선 누군가 잘 바른 살점을 숟가락마다 골고루 얹고 있겠지. 제비 새끼 같은 아이들, 분홍빛 입술에도 모처럼 생선 기름이 번들거릴 것이다.
저처럼 환한 저녁이 내게도 있었는데…. 취기 흥건한 아버지 노랫소리가 금방이라도 대문을 열어젖힐 것만 같다.
야트막한 능선이 부채꼴로 감싼, 동네 한가운데 아이의 집이 있었다. 장날 아침엔 모처럼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안산 모롱이로 사라졌다가, 해거름에 ‘쓰윽’ 나타나곤 했다. 그런 날, 아이의 눈은 자주, 그리고 오래 안산에 머물렀다.
“무울어 물어 찾아와 ~았소. 내님이 계에신 고옷을. 저 달 보고 물어 보온다, 님 계에신 고옷을 ….”
어둠이 젖은 파래처럼 뒤덮인 신작로를 막차가 쿨렁쿨렁, 밭은기침을 뱉고 지나면 으레 들려오는 노랫소리, 밀가루 반죽처럼 음절을 치댄 뒤 쭉쭉 늘여 뚝뚝, 수제비를 떠 넣듯 꺾는, 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란 걸 아이는 단박에 알았다.
“웬 떠꺼머리가 중소 한 마릴 끌고 나왔는디, 삐쩍 마른 것이 볼품이 하나도 읎다 이거여, 사료 대신 풀만 멕여 그렇다는디, 푸줏간에나 갈 소를 장사꾼들이 그 금에 쳐주간디? 애저녁에 그른 흥정을 그나마 나니께 붙여줬제.”
아버지가 개선장군처럼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고등어 몇 마리와 풀빵 한 봉지에 아이들 얼굴이 환해졌다. 비린내와 기름 냄새, 달짝지근한 팥소가 어우러졌지만 풀빵은 아버지의 체온만큼이나 따뜻했다. 그런 밤, 아이의 집엔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소금 독에 하루를 재운 뒤 숯불에 구운 고등어는 짭조름하면서 담박하고 고소하면서 다디달았다. 자반이란 좌반佐飯에서 온 말이니 고등어만큼 서민들의 밥상에 이바지한 생선이 또 있을까. 아버지를 닮아 비린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오일장이 오기만을 손꼽곤 했다.
예닐곱 살 무렵일 것이다. 딱 한 번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장터 풍경이, 수십 년 넘게 아이 가슴에 푸른 화인火印으로 남았다.
구전이 수중에 낙낙하겠다, 난전에 즐비한 국밥집을 그저 지나치지 못했을 아버지. 지나는 벗들을 죄 불러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는 동안 꽁꽁 언 고등어도, 풀빵도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꼬들꼬들 말라갔다. 막차마저 끊긴 그 밤, 설핏 졸다 깨면 하늘엔 쏟아질듯 별이 명명했다. 평소 어렵고 먼 아버지가 그토록 넓고 따뜻한 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이는 그때 알았다.
열 번째 봄이 오는 해토머리, 아이의 집이 장터처럼 왁자했다. 동네 사람들이 총총 집안을 오가고 친척들이 속속 도착했다. 마당 한쪽에 화톳불이 타고, 머리를 풀어헤친 연기가 집 안팎을 어른거리다 하늘 귀퉁이로 사라졌다. 이틀 후 차갑고 길게 누워 있던 아버지가 이승의 마지막 집, 상여에 올랐다. 노모의 곡소리가 동네를 휘돌아 안산에 오래 메아리쳤다.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만 겁의 인연으로 만난다는 부녀지간, 겨우 십 년을 함께했다. 가장의 부재를 절감하기에 열 살은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빈자리는 컸다. 언제부턴가 밥상에서 고등어가 사라졌고 막걸 리가 찰랑거리던 주전자엔 적요만 그득했다. 장날 저녁이면 으레 들려오던 노랫소리도, 늦도록 정담이 피어나던 밤의 풍경도 아버지를 따라 자취를 감췄다.
명색이 농부였으나 농사와는 거리가 먼 아버지였다. 게다 자상한 지아비도 살가운 아들도 아니었다. 서그럽고 늡늡한 성정이 장사에 걸맞았겠으나, 손대는 일마다 족족 손해를 보았다. 종국엔 조부가 금을 캐러 마련했다는 금싸라기 땅마저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오죽하면 당신께 명을 받은 자식들조차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노라.’ 강다짐했겠냐만.
삼십여 년 전 겨울밤. 아버지 등의 온기가 여태껏 나를 업고 온 걸까. 안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던 뒷모습과 노을의 잔영, 채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오일장 언저리를 맴돌았을, 마흔여섯의 생을 자꾸만 헤아리곤 하는 것이다.
잉걸을 그러모아 석쇠를 얹은 뒤 고등어를 뉜다. 대양을 누비던 관성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은 걸까. 등에 각인된 쪽빛 문양이 곧 물살을 일으킬 듯 선명하다. 저 벽문碧文이야말로 떠살이 물고기류가 고안한 눈물겨운 생존전략이다. 생에 단 한 번도 눈물샘을 가져본 적 없는 눈이, 툭툭 눈물을 떨군다. 아궁이 가득 해무처럼 연기가 피어오른다.
밤은 깊고 아궁이속 불꽃도 정점을 향해 재우친다. 노랗고 붉고 시퍼런 불꽃이 용으로, 봉황으로, 모란과 연꽃 모양의 꼭두가 되어 아버지를 호위하고 있다.
만가輓歌처럼 바람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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