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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별똥별 / 강돈묵

별똥별 / 강돈묵

 

 

 

방파제에 고등어 떼가 붙었다고 야단이다. 오랜만에 따라 나선다. 제철만 만나면 고등어 낚시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물론 고수들이야 그게 무슨 낚시 축에나 드느냐며 얕잡아볼지 모르나 손맛만은 그만이다. 긴 시간 기다림 끝에 피아노 줄을 튕기며 끌려 나오는 감성돔의 손맛을 최고로 치지만, 그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어쩌다 재수가 좋아야 겨우 맛보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고등어는 다르다. 떼로 몰려오면 바닷속이 온통 고등어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이때에는 바닷물의 빛깔도 거무칙칙하게 우러난다.

고등어 낚시는 밤에 해야 제 맛이다. 수면 가까이 회유하기에 굳이 낚싯줄을 길게 늘일 필요도 없다. 수심 이삼 미터로 하여 찌를 달고 거기에 선 라이트를 꽂으면 준비는 끝이 난다. 낚싯바늘에 홍개비를 꿰어 바닷물에 던지면 야광찌가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곤두박질친다. 미늘에 낀 고등어는 바로 내닫기에 야광 불빛이 물속을 가로질러 꽂힌다. 그 빛은 하늘을 가르고 떨어지는 별동별과도 흡사하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한 물고기다. 앞으로 질주만이 있을 뿐이다. 뒤로 회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장애를 만나면 살짝 빗겨 앞으로 빠져나간다. 수면 근처에서 끌려가기 시작한 야광은 불이 붙은 화살처럼 꼬리를 흔들며 바다 밑으로 끌려간다. 몇이서 낚시를 하다보면 별똥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차려진 저녁 식사는 마당의 밀대 방석이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나면 아무도 방으로 들려 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 여기저기서 부채로 모기를 쫓는 소리가 났다. 형은 슬며시 일어나 외양간에서 꼴을 한아름 안아다가 모깃불을 놓았다. 투드득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온 집안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연기가 꼴에서 나올 때만 보이고 퍼져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비록 연기는 보이지 않았으나 피어오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밤이 우리는 덮고 더욱 깊은 추억으로 밀어 넣는 중이었다. 희끗희끗 하늘에 별이 태어나고 있었다. 조금씩 자라난 별이 은하를 수놓고 긴 띠를 이루면 할머니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어디에서 왔는지 반딧불이 엿듣다가는 사라진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를 밀대 방석에 드러눕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이 내려와 눈 속으로 들어왔다. 밤하늘은 푹신푹신한 비단결이었다. 그 짙은 비단결에서는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별이 있었다. 그 별 무늬는 은하수처럼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쪽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은하수에서 시작된 불빛은 순식간에 비단 폭을 가로질러 저만큼 달려가서 사라졌다. 참으로 빠르게 질주하다가는 없어졌다. 그 빛을 바라보면 가슴이 뛰었다. 저것을 떨어진 고개 너머에 가면 주울 수 있을까. 저 산 너머에 가면 반딧불처럼 풀숲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에 설레는 가슴으로 하늘을 지켜보던 나는, 그곳에 가 보자고 곧잘 형을 조르곤 했다. 몇 차례 내게 '바보'라며 나무라던 형은 '별똥별'이란 별명을 붙여서 골려대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별똥별도 나처럼 성미가 급한가 보다. 하늘을 날아가니 세상 구경하며 천천히 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느긋하게 가지 못하고 제 성미대로 질주하다가 무참히 산화하고 만다. 은하수에서 떨어져 나와 궤적도 없이 사라지는 별똥별. 어둠은 그 빛을 포용해 주지 않는다. 유성이 사라진 하늘에는 순진한 별들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졸고 있다.

순리대로 움직이다가는 다른 이의 끄트머리도 따라잡지 못한다며 객기를 부리던 삶이었다. 그토록 가슴 태운 흔적은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아무리 용기를 내어 내달렸어도 지금 남은 것이 없다. 사라져 간 시간 속에서 산화한 내 지난 세월이 이제는 흐느끼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받은 상처만이 선명한 자국을 그리며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린 날 떨어지는 별똥별을 줍겠다고 하자 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 말에 담긴 형의 의중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즉부터 급한 내 성미를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에이, 이 별똥별아."

그토록 아름다워 가슴 설레며 살았는데, 이제는 별똥별을 볼 수가 없다. 분명 나이 탓이겠지.

고등어 낚시를 하고 오는데 언덕길이 칠흑이었다. 숱에서 나온 반딧불이 밤하늘을 유영해 간다. 젊은 날엔 직선을 추구하던 별똥별이었다면, 지금은 곡선으로 밤하늘을 나는 반딧불이다.

어림짐작으로 숲길을 빠져나오면서 하늘을 쳐다본다. 형을 다시 만난다면 지금도 그 별명을 불러 주려나. 아마도 까마득히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