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 송연희
배낭을 멘 남자가 전철 안으로 들어온다. 배낭이 불룩한 걸 보니 산나물이라도 그 안에 들어 있나보다. 등산화에 먼지가 뽀얀 걸로 봐서 어디 먼 산을 갔다 온 것 같다. 그가 바짓단에서 뭔가를 툭 털어낸다. 전철 바닥에 떨어진 건 마른 검불 몇 개와 손톱만한 까만 벌레다. 어쩌다 이곳까지 온, 털이 송송한 벌레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벌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눈이 심심하던 차에 볼거리 하나가 생긴 셈이다. 벌레는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조금 기어가다가 신발이 지나갈 땐 고개를 움츠리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발밑에서 죽을 것 같은 생과 사의 절박한 기운이 눈앞에서 벌어짓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불상사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위험을 감지하는 안테나가 놈에겐 있는지 커다란 신발도 슬쩍 피하고 뾰족한 하이힐도 스치듯 지나간다. 놈은 일보 전진하다가 우로 방향을 틀고 멈췄다가 다시 기어간다.
남자가 배낭을 메고 일어난다. 죄 없는 생명 하나를 데려와 미아를 만들어놓고 가버린다. 전철 안의 누구도 사투를 벌이는 벌레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만 놈을 주시하고 있다. 놈이 저토록 온 후각을 동원하여 필사의 탈출을 시도할 때, 내가 조금만 아량을 베푼다면 녀석은 이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나는 지금 철저히 방관자일 뿐이다.
내가 삶이라는 전철 안에서 절박하게 사는 동안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그렇다.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 또한 누군가는 관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쓸 때, 그 누군가도 내게 응원을 보내며 용을 쓰고 있었을까. 내가 위험에서 녀석을 구해주진 않으면서 살아서 이 공간을 빠져나가길 비는 것처럼 말이다.
이윽고 놈은 이제 방향을 바꾸려는 몸짓을 한다. 풀냄새 비슷한 걸 맡았는지,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던 기억을 떠올렸는지 머리를 한껏 치어든다. 놈은 운동화가 풀빛을 닮은 아가씨의 신발을 오르기 시작한다. 고물고물 오르는 모습이 기특하다. 절벽이나 다름없는 수직의 공간에서 떨어질까 싶어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잔간 전철역을 일별하는 사이에 놈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운동화 끈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어 코를 박고 있는 모양이다.
운동화가 일어나 간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놈도 함께 나갔나 보다. 하여간 녀석은 대단하다. 신발들이 난무하는 전철바닥에서 십여 분을 버티다가 밖으로 나간 걸 보면 말이다. 놈에게 오늘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운수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구사일생으로 제가 살던 풀숲으로 돌아간다면 참으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가끔은 나도 이 변변찮고 시금털털한 세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설령 지리멸렬한 삶에 종지부를 찍을 사건이라면 어떤가. 죽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도, 아프게 끌어안고 싶은 어떤 것도 없는 밋밋한 삶에, 번쩍하고 들이댈 비수 같은 거 하나 덜컥 내 그물에 걸렸으면 좋겠다.
오늘 밤 그놈은 무사히 밤이슬 내린 길섶에라도 기어들었을까. 지금쯤 녀석이 반짝이는 별을 보며 오늘 참 많은 것을 구경했다고, 전철 안에서도 살아서 돌아왔다고 홀로 낄낄거리고 있으면 좋겠다. 온갖 무서움과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그 새끼 때문에 웃기도 하고 가슴도 쳐가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 세상이나 미물들의 삶이나 살아가는 모양새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찌 보면 나도 벌레 같다. 조금 전 벌레가 멋모르고 전철 안으로 들어왔듯이, 나도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벌레가 당한 것처럼 위험에 처했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달콤한 향기에 취하여 손을 내밀다 가시에 찔리고 잔잔한 바다인가 하고 발을 디뎠다 빠지기도 했다. 세상은 나를 패대기치기도 하고 과하게 상금을 주기도 하였다.
살다보니 이제 내게도 배짱이라는 것이 생겼다. 하다가 안 되면 그만 두면 되고. 미련이 남은 건 다시 시작하면 되고. 이 나이 되어 생각해 보니 삶은 고민하고 끙끙거리며 끌어안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려놓고 털어버리고 내 안에서 내 보내고 그러면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던 그런 날들도 다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거였다. 소나기는 잠시 피하면 되는 것을 그 때는 무슨 고집으로 다 맞으려 했는지, 그게 다 젊은 탓이었을 것이다.
언제 쯤 나는 이곳에서 내리게 될까. 운동화가 그놈을 데리고 갔듯이 나도 누군가가 데리고 갈까. 처음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면 나는 뭐라고 이곳을 얘기할 수 있을까.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이 될지 모르지만 조금 전 그놈처럼 그때까지 잘 버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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