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시룻번 / 윤승원

시룻번 / 윤승원

 

 

 

창마다 뽁뽁이를 붙인다. 분무기로 창에다 물을 분사하고 문지르기만 하면 된다. 겨울 동안 집안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외풍을 줄이기 위해서다. 생각보다 쉽고 간단해 즐거운 놀이 같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계속 붙여둘 작정이다. 계절이 바뀌는 틈을 타 행여나 탁한 기류가 집안을 기웃거릴까봐서다. 뽁뽁이는 한지를 바르던 때의 문풍지 역할을 톡톡히 내 내리라 믿는다.

시루를 솥에 안칠 때 그 틈에서 김이 새지 못하게 바르는 반죽이 시룻번이다. 떡을 골고루 잘 익게 하기 위해 솥전과 시루가 맞닿은 부분을 빙 돌아가며 반죽을 붙인다. 이때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밀가루 반죽이었다. 그러나 부유한 집에선 쌀가루 반죽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떡을 찔 때 아이들은 구워지다시피 노릇노릇한 시룻번을 먹으려고 서로 부엌 아궁이에 불 때는 일을 도우겠다고 나섰다.

떡이 다 되었을 때쯤 엄마가 칼로 그것을 떼어주면 맛있는 주전부리가 되기도 했다.

막내와 엄마는 만나기만 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대화가 길어지면 분위기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각자 따로 있을 땐 세상없이 서로를 챙기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인데.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방법에 문제가 있단 걸 아는 동생은 나에게 모자간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의 틈을 막아달라고 자주 불러댄다.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그들의 대화법을 아는 나로썬 거절할 수가 없다.

지난해에는 경로당에서 엄마 팔순 생일을 치렀다. 다들 바쁘게 살기도 하지만 마음을 내지 못하면 손수 생일상을 차리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엄마로썬 팔순 생일을 마을 어른들과 꼭 함께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치룰까 걱정하는 소릴 듣고는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며칠간 신경이 쓰였지만 제대로 잘 해냈다. 다만 동네 어른들이 "며느리들은 와 안 오고 딸이 혼자서 하노." 한 마디씩 염려를 했다. "여태는 며느리들이 엄마 생일상을 차려 드렸으니 이번에는 제가 한번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룻번을 발랐더니 모두들 고갤 끄덕이며 이해해 주었다.

동네 어귀 장승이나 당수나무는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준다. 마을을 들어가며 나가며 작은 돌덩이라도 얹어두고 소원을 빈다. 요즘에 그런 행위들은 민간신앙이라 터부시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간절해진다. 힘겨운 세상을 살면서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보호받고 싶은 심리이리라. 그러고 보면 종교야말로 가장 큰 시룻번이 아닐까 싶다.

바닥이 구멍 난 항아리를 두꺼비가 막아주어 콩쥐는 물동이 가득 물을 담을 수 있었다. 온몸을 바쳐 콩쥐를 도운 두꺼비는 시룻번이었다. 한 소년이 댐에서 물이 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나중에는 자신의 팔뚝으로 그 틈을 막아 네덜란드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틈을 막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이야기다.

시룻번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누굴까.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 텐데 왜 이러고 살까. 자신에게 수도 없이 질문을 던져 놓고도 또 거부하지 못하고 그 역할을 해낸다. 주인공은 되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존재감은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처럼 맡은 일을 하게 된다. 알아주는 이 업어도 스스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지만 때로는 외롭고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땐 산책을 하면서 야생화를 찾아 나선다. 나와 세상과의 사이에 틈을 메우는 방법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지금까지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했는지는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다 자라 성인이 되었고 더 이상 나의 손길은 필요치가 않다. 그러나 타 지역에 살든지 다른 나라에 살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나를 지켜주는 시룻번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수호천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받쳐주었다. 더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을 때도 나의 손을 잡아 이끄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런 일을 여러번 경험한 후부터는 무엇을 하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문득 겁이 난다. 내가 어떤 기로에 섰을 때 아무도 관심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급기야 나로부터 내가 분리되어질 때가 오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 때문에 더욱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속해 있는 건 아닌가. 외로운 섬이 되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참아내고 견디기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든다고 모든 난관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살이라는 것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시룻번이기를 자청했듯이 누군가 또한 나를 지켜줄 것이다. 이제 아무리 추위가 와도 뽁뽁이가 집안의 온기를 보호해주리라. 일을 끝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