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도림 중창단 / 엄현옥
1984년 지인의 소개로 듀엣이 결성되었다. 멤버는 29세의 남자와 27세의 여자였다. 남자는 테너를 맡았고 여자는 소프라노를 담당했다.
초기 그들의 이중창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사전 오디션을 거치지 않았기에 음역에서 이탈되었으며, 각자의 일을 가진 터라 충분한 연습도 없었다. 테너가 바리톤의 음색을 내거나 소프라노가 알토에 가까운 낮은 음을 낸 적도 있었다. 그들은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협화음이 외부로 새어나간 적은 없었으니, 비교적 무난한 조합이라고들 했다.
듀엣의 이동수단은 삼천리표 자전거였다. 여자는 자전거의 뒷자리에 앉아 단장의 허리를 붙잡고 읍내를 누볐다. 그들은 주말이면 수습 단원 시절 갖지 못한 여유를 마음껏 누렸다. 여가를 이용하여 계절 따라 여행을 떠나는 것도 당시의 주요 사업이었다.
3년 후, 그들은 멤버를 보강하여 트리오가 되었다. 새로운 멤버 영입을 간절히 바랐지만 처음 겪는 일이어서 좌충우돌했다. 신입은 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는 듯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쳐다보곤 했다. 듀엣은 그런 신입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며, 장차 바리톤의 역할을 원만하게 해주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신입은 옹아리를 시작으로 제 소리만 내기 시작했으므로, 듀엣은 그에게 많은 것을 맞추어 갔다. 그들은 조화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또 한 명의 여성 멤버를 충원하였다. 비로소 성비性比의 조화를 이룬, 듀엣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중창단重唱團으로 발전한 것이다. 트리오의 멤버였던 세 살짜리 단원은 막내 자리를 내주었으나 신입에 대한 텃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곤히 잠든 신입의 얼굴에 이불을 덮거나, 고층 베란다에서 신입의 놀이 도구를 던져버린 적도 있었다. 겨우 뗀 자신의 우유병을 다시 물기 시작했고 1인용 유모차에 동승하는 바람에 유모차는 정원 초과 운행을 일삼았다. 마지막 영입 단원의 신고식은 그렇듯 고되었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남매 단원도 나름대로의 멤버십을 터득하게 되었다. 몇 곡 안 되는 레퍼토리와 기교 없는 담백한 음색만으로도 중창단은 원만한 화음을 낼 수 있었다. 악상 기호에 주의를 기울였고 자신의 발성이 다른 성부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도 은연중 익히게 되었다. 중창으로 부르다 독창이 필요할 때면 그의 음이 돋보이도록 서로의 모탕이 되어주기를 즐겨했다.
어느덧 창단 30주년이 다가왔다. 세월을 입어가면서 초기의 결속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다른 창窓을 갖게 되었고, 같은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묶어놓을 수 없었다. 각자 바라보는 세상은 현란했으며 다양한 형태로 그들의 참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창립 멤버였던 단장과 여자는 자신의 일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친 3번 단원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 중이며, 4번 단원은 전공과 관련된 영화 홍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들의 밤은 낮보다 분주하여 함께 화음을 고를 시간을 갖지 못한다. 각자 제 음색을 내며 자신의 소리만 들을 뿐이다. 이제는 식탁에 앉아 서로 마주보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일조차 드물다. 동반여행은 물론 생일에 함께 모여 촛불을 켜지 못할 때도 있다. 가족이 식구라는 어휘와 동일시된다면 가족 해체의 위기에 놓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제 단원들은 묵음의 화음을 노래한다. 단장도 리더의 역할을 잊은 듯 최근에는 적극적인 중창 지도를 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음역이 조화를 이룰 때까지 연습할 기회를 갖지 못해 신곡 연습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로에게 조용한 나침반이 되어줄 뿐이다. 악보가 없으니 지켜야 할 악상기호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음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 소리만을 주장하거나 상대의 음색을 무시하는 일은 없다. 그들이 화음을 통한 적극적 소통을 포기했다고 하모니에 대한 꿈마저 버린 것은 아니다. 더러는 갈등으로 불협화음을 빚을지라도 멈추거나 포기할 수 없다. 언젠가는 연주의 피날레를 멋지게 마무리할 날도 오겠지.
그동안 보금자리를 몇 번 옮겨야 했던 단원들은 서울 신도림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다. 앞으로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내일이 불확실하지만 오늘에 충실할 뿐이다. 청년기의 단원들은 장차 각자의 중창단을 꾸릴 것이고 삶이 지속되듯 연주는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바리톤과 알토가 제 갈 길을 가면 남자와 여자는 듀엣으로 남으리라. 그들은 지금껏 그럴듯한 화음을 추구했으나 완벽한 조화에 이르지 못했다. 앞으로도 성량이 예전 같지 않음을 핑계로 음 이탈을 일삼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불협화음조차도 화음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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