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 지켜주소서 / 민명자
어렸을 때 ‘사방치기’놀이를 자주 했다. 네모 몇 칸을 그릴 수 있는 땅바닥과 납작한 돌멩이와 친구 한두 명만 있으면 즐겁게 놀 수 있었다. 여럿이 모이면 편을 나눠서 놀기도 했다. 1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적은 그림판에 돌을 던져 깨금발로 돌차기를 하고 두발 딛기도 하면서 순서대로 돌며 다시 자신의 돌을 들고 출발점으로 오는 놀이다. 이때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던진 돌이 선(線)에 닿지 않아야 하고 한 칸 한 칸 뛸 때 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정해진 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사방치기’는 놀이이되 인생게임의 법칙을 일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지켜야할 선이 있다. 그 선은 성숙한 자아가 실천할 수 있는 무언의 약속이다. 길을 갈 때만 해도 인도와 차도 구분이 있고 차도엔 차선이 있다. 역주행을 하거나 서로의 차선을 어기면 사고가 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하물며 긴 인생길에서야 더욱 그렇지 않으랴. 사람이 가야할 길을 따르는 일, 그것이 바로 도(道)이다.
최근 세간에서 거센 파도를 일으키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역시 금지선을 무시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미 오십여 년 전에 이런 일을 목격했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도처에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수치심을 느끼며 침묵했던 여성들이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권력적인 성문화와 만용은 이제 발붙일 곳이 없다. 폭력적 소유를 사랑이라 포장하고, 여성을 노리개 삼은 성희롱을 사소한 일탈이나 마초적 낭만이라 합리화하는 행위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미투’ 운동은 바로 인간 평등의 선을 지키는 일이다. 제3자가 고발하는 ‘아우팅(Outing·쟤도 당했다) 미투’도 피해자의 보호선을 독단으로 침해한다는 점에선 폭력적이다. 선은 벽처럼 견고하지 않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게 흠이지만 서로 침범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알려준다. 선은 균형이고 질서다.
무경계는 유기적 통합과 초월의 기초로도 읽히지만 쓰임에 따라서는 카오스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세계는 코스모스 안에서 안정의 리듬을 유지하며 흘러간다. 이와 같이 전근대적인 질서로 여겨지는 인륜도덕도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인간가치 하락이 도를 넘어 사회가 점점 천격(賤格)으로 흐르고 있어 우려된다. 실종되어가는 인간존중의 미덕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혹은 노인소외 증가 등 사회면을 어지럽히는 기사들도 알고 보면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선을 위배해서 생기는 일이 대다수다. 어느 시대건 도덕의 부재는 혼탁한 세상을 불러왔다.
저급한 포르노 식 언행 말고도 일상에서 다반사로 벌어지는 ‘선 밟기’ 중 하나가 무례한 언어폭력이다. 인터넷 악플이나 길거리 막말 등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어 오히려 무뎌질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게 있다. 농담의 너울을 쓴 언어 배설행위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서 자주 겪어 피로도가 높다. 친한 척, 아무 뜻 없는 척, 은근히 조롱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토설하고는 상대방이 언짢은 내색을 하면 ‘농담인데 예민하게 군다.’고 덮어씌우며 빠져나간다. 그렇게 해서 농담한 사람은 호쾌한 자가 되고 이에 반응하는 사람은 졸지에 옹졸한 자가 되고 만다. 애정 어린 친밀감의 표시인지 비아냥거림인지는 듣는 이가 더 잘 안다. 농담은 선용하면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비하가 섞이면 불온한 진담이 된다. 진심어린 충언은 달게 받아야 할 보약이지만 비열한 할퀴기를 숨긴 우롱은 독가시가 된다. 농담의 가치는 대상이 함께 흔쾌히 웃을 수 있을 때라야 빛난다. 가볍게 뱉어내지만 농도에 따라선 그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아 폭력으로 작동할 소지가 다분한 언어가 바로 농담이다.
본의 아닌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럴 땐 그저 웃어넘기며 모르는 척 지나쳐버리지만 여러 번 반복될 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아무리 선의로 받아들이려 해도 여러 사람 앞에서 받은 모멸감이 쉽게 지워지지 않거나 저의가 의심스러울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끈적끈적한 마음이 들러붙을 땐 차라리 나의 곡해였기를 내심 바라며 그의 의중을 되묻기도 한다. 그 말, 어떤 뜻으로 한 거냐고. 그 물음에 우물쭈물 변명하거나, 사과하거나, 아예 속내를 보이며 곁을 떠나는 이도 있다. 자신이 던진 말을 돌아보기보다는 내 질문에 대한 노여움이 더 앞섰던 걸까. 아쉽지만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웃으며 손을 흔들 수밖에. 그런가하면 이전보다 더 돈독해지는 이도 있다. 상호 이해를 도와 서로 신뢰하며 다시 손잡고 긴 인연의 끈을 이어갈 지기이니 그야말로 보석 같은 존재다.
이런들 저런들 ‘둥글게, 둥글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사에 실천하기란 허상에 가깝다. 경우에 따라선 무조건 좋은 척 참는 게 능사도 아니거니와 비생산적인 감정을 거듭 소모하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다. 자기정신은 피동이 아니라 능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소견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돌차기를 하며 선을 넘어오는 이들도 있다. 알량한 권력을 완장으로 여기며 행세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불가항력적인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일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러나 웬만한 권력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며 종속되는 사람에겐 태산 같은 힘으로 작용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티끌에 불과하다. 문단에선 지면이나 감투가 권력의 주역을 담당하기 일쑤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이를 존중한다. 박애주의자가 될 깜냥이 안 되는지라, 부당한 ‘선 밟기’로 자존의 영토를 헤집어놓는 침입자에겐 너그러움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 그럴수록 외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두렵지 않다.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인간은 본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거늘, 관용이나 화합이라는 미명 아래 허허로운 가면의 웃음을 날리며 야합하기보다는 자발적 고독도 즐길 만하다. 비루한 현실에 갇혀 밤잠을 설칠 바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기보다는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연줄 따라 배경 따라 이리저리 눈치껏 헤엄을 잘 쳐야 출셋길이 넓어지는 세상에서 어리석어보일지라도 더 중요한 건 내 안의 자유다.
삶은 각자가 자신의 방식에 맞게 택할 일이니 정답은 없다. 다만 밟혀서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누구든지 자기 안에 다치고 싶지 않은 금지선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생을 유지하는 토대일 수도 있다. 선은 곧 가치이며 권리다. 어떤 이유로든 인간존엄의 마지노선을 뚫고 들어오는 돌차기를 하지 마시길, 함부로 인격을 훼손하며 선을 밟고 들어오지 마시길, 나는 바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우주질서 따라 피고 지는 꽃은 어디서나 사람보다 아름답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사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다행이랄지 아직은 내 곁에 본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분들이 많으니 고마운 일이다.
노년의 산정과 가까워진다는 건 자유의 시간과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억지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되고, 닫힌 문 앞에서 기웃거릴 일 많지 않으니 굳이 굴종의 맷집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 인생의 가을까지 열탕을 견디며 살아온 자가 택할 수 있는 선물이다. ‘늙어간다’라는 진행형이 이래저래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문득 보니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자리에 ‘나’와 다수의 ‘그들’이 있다. 동승했던 인생열차에서 이미 하차했거나 함께 곁자리를 지키며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거친 세상을 통과하면서 주고받은 행복 또는 상흔들이 형형색색 무늬를 그리며 얼룩을 남긴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을지 모를 상처의 그림자도 얼비친다. ‘어루만져주소서.’ 난해한 추상화 같은 세태의 풍경 한복판에서 마음으로 뇌어본다. 이 세상을 주재하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 생을 온전하게 이끄는 조력자가 계시다면, 들어주실까.
‘나’와 ‘그들’이 인간존엄과 품격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고 온갖 상처의 그물로부터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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