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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소원과 성취 사이 / 김아인

소원과 성취 사이 / 김아인

 

 

 

 

오늘도 갓바위다. 지난 우란분절에 다녀갔으니까 며칠 되지는 않았다. 떼 한번을 쓰지 못하고 자란 원을 풀듯이 답답할 때마다 갓바위 님 앞에서 주절거리면 엄마 무르팍에 엎드린 양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마도 그 맛에 자주 찾는 것이리라.

다들 무슨 절박함이 그리 많은지 평일인데도 갓바위 마당은 이미 만원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천인단애의 너럭바위 허공에 오방색 등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가려주고 있다. 그 그늘 아래서 축원을 올리는 사람들 모습이 숙연하다. 얼마나 간곡하면 저런 자세가 나올까? 나는 정성 비슷한 흉내라도 내 볼 참으로 합장하고 갓바위 님을 올려다본다.

늦게 꾸는 꿈일수록 아침이 빨리 오면 안타까울 것이다.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던 저녁이었다. 내가 있는데도 내가 보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눈을 비비고 거울을 보았다. 표정 없는 누군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 아닌 것 같은 내가 서 있었다. 초라한 모습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본래의 내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비볐다. 그러자 여러 개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마에 굵은 가로줄이 그인 얼굴, 팔자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 근심 가득한 얼굴, 찡그린 얼굴,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나야, 하는 순간 잠에서 깼다.

나는 어디까지가 나일까?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정수기에서 찬물 한 컵을 뽑아 마시며 생각했다. 생각은 고민으로 바뀌었다. 고민은 꿈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꿈은 꿈을 만들었다. 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꿈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나이에 꿈은 무슨 꿈, 꿈이 밥 먹여주나, 코웃음을 쳤다. 꿈은 아무나 꾸는 게 아니라고 비아냥거렸다. 의기소침해졌다. 다행히 꿈이 도망치지지는 않았지만 은밀해졌다. 꿈을 데리고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다. 감이 집히지 않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꿈은 소원과 성취 사이에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꿈이 꿈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사이를 건너야한다고 생각하자 목표가 되었다. 잘 차려 입은 꿈이 소원역으로 갔다. 성취역까지는 얼마나 멀까?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소원역을 왔지 싶은데 성취역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언저리만 맴돌다 돌아섰다. 그런 날은 마음이 바빴다. 즐거운 바쁨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으므로 열정 하나면 뭐가 돼도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허나 착각으로 날뛴 자신감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러다가는 정말 내 꿈이 젖은 속눈썹 아래 미완성의 문장으로 남게 될까, 염려스러웠다. 잎과 꽃이 하나 되지 못하는 상사화처럼 소원과 성취가 한 되지 못하는 꿈이면 어쩌나,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급기야 울음을 껴안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물속에 훤히 보이는 돌도 막상 주우려면 아득하듯이 소원과 성취 사이 그 간극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갓바위가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풍문에 솔깃해졌다. 찾아가 보기로 결심을 세웠다. 그분은 팔공산 관봉 꼭대기에 앉아계시는데 올라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먼저 들러왔다. 아닌 게 아니라 갓바위 님과의 상견례 과정이 쉽진 않았다. 그날도 따가운 햇살이 춤을 추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등줄기는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이동하듯이 스멀거렸다. 간간이 산바람이 불어와 할머니의 손부채질처럼 감미로웠지만 더위를 물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끝 모를 돌계단이 수시로 내 무릎을 시험했다. 갈망하는 것은 멀리 있고 포기라는 쉬운 유혹이 가까이서 흔들었다. 하지만 늦게 만난 꿈을 이뤄야한다는 포부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은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선덕여왕 때 조성한 것이란다. 나도 엄마가 있었다. 까막눈이셨던 당신은 자식들만큼은 도시로 내보내서 공부시킬 요량이었고 엄마의 꿈이었다. 층층시하에서 덜 먹고 덜 쓰고 푼푼히 모아놓으면 아버지는 노름으로 한 방에 털어 넣기 일쑤였다. 그게 우리 집 몰락의 진조라는 것을 가족들은 다 아는데 아버지만 몰랐다. 꿈을 잃고 몸져누운 엄마가 영영 못 일어났을 때 엄마의 노모께는 이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풀꽃들과 눈 맞추며 키 재고 놀던 내 어린 행복도 딱 거기까지였다. 엄마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의현대사의 효심이 불현듯 나의 불효를 상기시켜준다.

공양미를 꺼내 제단에 올리고 촛불을 밝힌다. 여전히 어색하다. 서툴고 둔한 몸짓을 누가 보기라도 하나 싶어 낯이 붉어진다. 얼른 뒤로 돌아가 부처님의 갓머리 끝자락도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엎드린다. 앞자리가 비어있어도 뒤로 가는 습관은 지은 죄가 많은 까닭일 게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기도방석이 흥건하다. 베갯머리의 꿈을 되뇌며 삼배를 드리는데 손바닥이 미끄러지면서 이마를 찧고 말았다. 오늘 불공은 망쳤구나, 불길함이 끼어드는 찰나였다. 저 아래에는 꼼도 없이 살아가는 중생들이 많다고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다. 가만히 귀를 세우고 들으니 스님께서 약사여래불을 읊고 계신다.

삼성각과 공양간이 마주한 마당에 섰다. 오방색 등을 이고 소원과 성취 사이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많다. 등에 달린 간절한 소원들이 꼬리지느러미처럼 파닥거린다. 활자화된 소원들은 구체적이다. ‘수능고득점 희망대학합격이 주를 이루는 걸 보니 수능이 가까워지고 있음이다.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가족을 휘한 기다가 대부분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이들 대학입시나 남편의 승진을 바라며 공들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가장 센 기도처가 어디일까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 창에 물은 적은 있다. 팔공산 갓바위가 제일 위에 떠서 놀랐었다. 폭염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이유일 게다.

나에게 갓바위란 기도 도량이면서 기댈 공간이다. 변변한 비빌 언덕 하나 없다가 갓바위를 알고부터는 믿고 하소연하는 대상이 되었다. 시종일관 근엄한 표정에 살뜰함은 없지만 어떤 이야기를 풀어놔도 비웃거나 번질 우려가 없어서 든든하다. 늦은 꿈으로 동동거릴 무렵 판을 새로 짜라는 말씀과 헤어지고 돌아와 많이 아팠을 때도 갓바위 님께 푸념하며 상심을 달랬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그 말의 참뜻을 되새겨본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꿈의 뒤꿈치를 꽉 붙들고 살라는 부처님의 진언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자 제법 불제자가 디 된 거 같아서 웃음이 난다.

청정한 기운 한 자락 품고 이제 내리막 계단에 섰다. 소원과 성취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아득하지만 다진 각오만은 팔월의 팔공산 숲만큼이나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