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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일탈 / 박경대

일탈 / 박경대

 

 

 

어둡 살이 낀 골목의 선술집이다. 조명조차 어두운 실내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막다른 골목의 끝 집이라 경찰이나 선도 선생님을 마주치면 달아나지도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여러 번 와본 듯 파전을 놓고 술을 마시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그날 나도 교복 차림으로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그녀가 오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창밖만 쳐다보았다. 문 앞에 서 있는 주인 할머니가 지나가는 학생을 노골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조바심을 느끼던 그때 단발머리의 그녀가 나타났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들어오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녀는 실내를 둘러보더니 나의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맥주를 가득 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건배라고 하곤 단숨에 잔을 비웠다. 땅콩과 오징어를 안주로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잠시 후, 테이블에는 맥주병이 세 개나 비워졌다. 발갛게 물들어 가는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예쁘게 보였다.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내 주었다. 기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취기가 오른 내가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들어가지 말고 외박하면 어때?”

그럴까? 어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더 취해볼까?”

그녀는 별로 놀라지고 않고 내 말을 받아넘겼다.

결국, 테이블에 빈 맥주병을 열 개를 채우고 나서 일어섰다. 둘 다 비틀거렸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걸었다. 알록달록한 주점의 외등이 마치 우리 둘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개의치 않았지만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목적지가 보였다.

주인은 미소를 띠고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아주 잘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 대여비가 얼마입니까?”

, 만이천 원입니다.”

우리가 교복을 빌려 입고 7080 술집에서 분위기를 잡은 그날은 35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