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식탁 / 김아인
찬비 내리는 새벽이다. 아파트 입구의 빨간 베고니아가 온몸으로 비를 맞겠다. 이삿날 날이 맑아 천만다행이었잖은가. 지난여름, 헌 아파트를 비워주고 나올 때 정든 집이 발목을 잡는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하루를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헤아려보니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다. 포장이사라지만 주인 손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아직 풀지 못한 박스들이 곳곳에 쌓였으나 잔 정리는 한숨 돌리고 하려 한다. 무엇보다 이번 이사의 가장 큰 변화는 내 작업실이 생긴 것이다. ‘드레스 룸’이라는 공간을 작업실로 꾸몄다. 안방 모서리에 컴퓨터 하나 달랑 놓고 글을 쓰다가 독방이 생겼으니 나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필력까지 상응해주면 얼마나 좋으랴.
삶이란 게 본디 그런 것일까? 변수라는 것이 생활 반경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 북구에서 동구 구민으로 입성하는 과정에 곡절이 많았다. 20년 넘은 헌 집을 팔고 새집으로 갈아타려는 생각에 신규아파트 분양을 받았었다. 사정상 바로 입주하지 못하고 3년 동안 전세를 놓았다. 그러다가 살던 집이 팔려 비켜줘야 하는데 이번엔 세입자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사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타협을 봤고 구미에 사는 지인의 빌라에서 두 달을 지내는 불편을 감내했다. 묵은 살림을 꺼내놓으니까 자질구레한 게 어찌나 많은지, 중고시장 비슷한 형국이었다. 사들이기를 좋아하는 내게 훈계하는 남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린 탓이다. 처리비용 들여가며 정든 것을 버리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소모품인 사물 욕심은 버리고 글 욕심만 키우자고.
부엌 짐을 풀며 깨진 그릇 하나 나오지 않아서 안심했다. 사실 짐을 뺄 때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매실엑기스 유리병을 깼었다. 아깝고 속상했으나 다친 데 없느냐는 말이 먼저 나왔다. 아줌마는 변명과 해명 사이의 애매한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 주장이 강한 편인데 대체로 좋은 게 좋다는 방식으로 산다. 밥상머리 교육이랄까? 손해 보고 사는 게 남는 거라는 할머니 밑에서 자란 영향이 크다. 어릴 때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할머니의 인생철학이 내 삶 깊이 배어있음을 실감한다. 딸애한테 사정을 말했더니 이삿짐센터에 전화해서 보상을 요구하랬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아줌마한테 피해가 미칠 게 뻔해서.
아뿔싸? 이번에는 신발박스가 없다. 짐을 다 들였는데 보이지 않는다. 왕복 이사였기에 지난번 조를 이룬 분들이 오셔서 컨테이너 짐을 올리고 풀었었다. 전화로 확인해보니 현관에 놓았는데 현관이고 신발장이고 흔적조차 없다. 포장이사라는 게 짐을 싸는 것은 물론 풀고 정리하는 것까지 책임을 진다고 들었다. 따지고 들면 보상 받을 수 있는 문제다. 허나 이번에도 옮긴 분들께 불이익이 갈 것을 염려하여 사무실에 알리지도 않았다. 고생하셨다며 자장면이라도 사드시라고 5만원 팁까지 얹어드렸지 않은가. 그래놓고선 싫은 소리하며 언성 높이기 뭣해서 웃고 말았다.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새집에서 새 신 사서 신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뜻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딸애가 “보살 나셨네.”한다. 무한 동정의 DNA는 누구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하루아침에 내쳐진 가재도구들은 어디서 얼마나 서운해 할까? 20년 이상 손때 묻고 정든 것을 대부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었다. 색깔이 좀 퇴색했을 뿐 정하게 써서 장롱 문짝 하나 덜컹거리는 것 없는데도 미련 없이 버렸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구식이라는 것, 새집에 안 어울린다는 것이 이유다. 유일하게 퇴출당하지 않은 것이 식탁이다. 내 작업실 책상으로 쓸모가 변경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6인용 식탁은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 프린트까지 올려놓고서야 비로소 불안한 가슴을 쓸어내렸으리라. 앞으로 여기다가 무엇을 차릴지 벌써 의욕이 넘친다. 피붙이처럼 서러운 것, 강퍅해서 외로운 것, 아파도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는 것,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것, 무심결에 잘못한 것, 중얼중얼 눈물로 밥을 지어 고봉으로 담아 올려야겠다. 소화력이 좋은 누군가가 따뜻이 잘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밥.” 오래된 식탁 너머에서 네 식구가 복닥거리던 시간이 건너온다. 돌아보면 잠깐인데 먼 옛날처럼 아득하다. “밥 안 먹나.” 소리의 진원지는 남편이다. 벌써 때가 됐나보다. 창틀에 오종종 앉은 빗방울을 내다보며 손을 뻗어본다. 비가 그쳤다. ‘소방차전용’ 이라 적힌 노란 고딕체 글자가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하다. 환영한다는 듯 마침 까치 한 마리 날아와 소나무에 내려앉는다. 휘돌아가는 금호강 물줄기를 따라 자욱한 운무가 한 폭의 담채화 같다 이제 이곳에서 이런 풍경을 자주 만나겠지? 20년 넘게 오르내린 태복산의 백세공원은 서서히 잊히리라. 미지의 그림에 대한 기대감이 잊힌다는 아쉬움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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