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선을 기꺼이 사용한다 / 이주리
사람은 불행한 상황, 불행한 관계에 놓여있을 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불행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낙담주의자가 되거나, 자신은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최면을 걸고 아주 작은 순간의 작은 행복들을 고통에 대한 진통제로 삼아 자신의 의식 속에 행복의 균주를 심어 행복세포를 배양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을 남 탓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세상에 대해 불만을 던지는 그 외의 분류도 있긴 하다.
극단적이 되면 결과적으로 첫 번째 사람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되고, 두 번째 사람은 다소 위선적으로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게 된다.
실제로 나의 지인들은 몇 년 사이에 세 명이 자살의 방법을 택했다.
췌장암으로 향후 자신의 고통과 치료에 지치고 남은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보다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지인, 지난한 발걸음의 생을 뒤돌아보며 온 생을 던져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로 인해 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려 인생 자체에 무의미를 느꼈던 지인,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억울하게 비리에 관련되어 세상에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이기지 못했던 지인, 고통과 괴로움을 정직하게 받아들인 세 명의 지인을 나는 잃었다.
첫 번째 사람은 고통과 슬픔에 정직하나 자신을 스스로 죽여 가는 과정을 겪고, 두 번째 사람은 행복을 가장한 거짓을 승화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끊임없는 최면과 세뇌로 마침내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아는 그녀는 적지 않은 나이에 비해 소녀적 감성을 고스란히 보존해 오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거짓으로 행복한 척하는 위선적인 여인이라는 혐의를 두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상하고 로맨티스티인 남편과 효녀 효자인 자식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은 모두 가정에서 나온다는 행복한 여인이었다. 나는 가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그녀에게 귀여움을 느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을 도와주는 도구가 바로 SNS다.
끊임없이 나는 예쁘다, 나는 착하다, 나는 가치 있다, 나는, 나는. 나는… 행복하다, 라는 자기최면의 자기애에 많은 사람들의 공식적인 긍정과 지지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 사람에게는 "나약한 놈!" 두 번째 사람에게는 "위선적인 놈!"이라 부른다.
어쩌란 말이냐. 인생 자체 '괴로울 고'가 본질이기 때문에 진짜 순수한 행복은 순간적으로 밖에 가질 수 없으니 어쩌면 인간은 이 두 가지 밖에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고통에 솔직하나 불행 속에 놓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는 나약함보다 위선적이지만 끊임없는 자기최면으로 행복을 훔쳐오는 쪽을 택하고 싶다.
위선이 위악보다는 백 배 나은 것 아닌가?
그것을 사람마다 정의하길 '위선'이라 이름 붙이는 사람과 '극복'이라 이름 붙이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가끔 나도 이런 상황에 내던지게 될 때 불행하다. 눈물 많고 정 많은 것이 '감상적'으로 취급당할 때, 작은 순간 작은 행복들을 불행의 진통제로 삼는 것이 '위선'이라 취급당할 때, 늙고 홀로이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효녀인 척' 취급당할 때, 사람들에 대한 친절이 '악어의 눈물' 또는 '오지랖'으로 취급당할 때, 옳고 그름에 대한 용기가 '잘난 척'으로 취급당할 때, 자식에 대한 애정이 '주책'으로 취급당할 때….
불행함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최선의 방법이 만약 '위선'이라면 나는 그 위선을 끊임없이 그리고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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