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 방민
올레를 걷는다. 차도를 따라 걷다가 마을로 접어든다. 올 레는 마을로 난 길이 대부분인데 차도 옆에도 있어 가끔 자동차와 같이 쓰기도 한다. 길옆에 시선을 붙잡는 게 있다. 다 가가 보니 플라스틱 생수병이 풀숲에서 고개를 내민다. 이곳에서 오래 누굴 기다렸는지 먼지 때가 끼었고 찌그러져 있다. 임에게 내쳐진 섬 색시마냥 애처로워 보인다. 고개를 얼른 돌리고 발길을 서두른다. 일회용이기에 저리 마구 버렸겠지 하는 생각이 배낭에 훌쩍 올라탄다. 잠시 무게를 느낀다. 가벼워질까 생각을 떼쳐 버리려 빨리 걸어 본다. 틈입한 상대는 쉽게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달래서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무녀의 춤사위 한 자락 펼치듯 생수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어울려 한판 놀아볼거나 발짓마저 보태니 그에게도 진정이 전해진 걸 까 조금 배낭이 가벼워진 듯 발길에 속도가 붙는다.
아마도 휴대용 물병이라면 저런 모습으로 길가에 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일회용이라 제 용도를 다했으니 저런 폐기 처분을 받겠지 생각해 보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걷다 보면 일회용 생수병만 발견하는 게 아니다. 버려져 뒹구는 음료수 캔도 적잖이 눈에 뜨인다. 과자와 사탕을 품 었던 종이나 과일 껍질도 같은 신세라 마주하는 심사는 무겁다. 어떤 길이건 한 두 개씩 심심치 않게 나타나 눈길을 잡아챈다. 일회용 운명을 보는 듯해 발길이 머뭇거려 조금 피곤하다. 분명 이 길을 지나간 어떤 올레꾼의 설치 미술작품일 거라 생각을 고쳐본다. 결코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는데, 그 의 미감은 많이 다른지 모를 일이다.
일회용이라 저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을 굳히려 하자, 세 상 만물 어느 것도 일회용 아닌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 하며 꼬리를 물고 더 세게 달려든다. 물건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걷고 있는 시간도 일회용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이 시간 이 한 번 흘러가면 다시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일회용 아닐 텐가. 다시 쓸 수 없는 것, 반복되지 않는 것은 일회용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곳 올레길 도 역시 일회용이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언제 오게 될 것인 가. 아니 다른 때에 또 걷는다 해도 그동안 풍경이 달라졌을 거고, 나 역시 그전과 달라져 서로 다른 상태이니 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이 역시 또 일회용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다.
곰곰이 따져보자니 인생 역시 일회용 아닌가. 세상에 태어 나 한 번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바로 일회용이 분명하다. 불가에선 전생이 있고 현생을 거쳐 내세까지 있다고 삼생을 말하지만, 실감할 수 없으니 별로 다르게 와 닿지 않는다. 만 일 그것을 품에 꼭 붙안아 들인다 해도 매번 생은 역시 한 번뿐이지 않은가. 이리 보아도 저리 굴려도 인생은 일회용이란 결론을 얻는다.
생수병을 버린 사람도 자기 인생이 일회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저리 함부로 버릴까. 그 인생은 길에 던져버리는 생수병과 다르다고 정녕 생각하였을 것이다. 영생이거나 장생을 꿈꾸기에 별 거리낌 없이 저리 길가에 팽개쳤으리라. 그가 만일 일회용인 자기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저 생수병일망정 곱게 돌아갈 자리에 보내주었을 테지, 일회용 생각이 슬며시 다가든다. 저 앞길에 또 하나 생수병이 무연히 바라보는 눈길에 슬몃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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