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화女心花 / 박헌규
은빛 바다의 봄 햇살이 호사스럽다. 핏빛으로 물든 남도의 섬, 오동도에서 나는 정절의 여인, 여심화를 만났다.
물일 나간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다 도적 떼에 쫓기어 창파에 몸을 던진 가련한 여인, 그 여인의 붉은 순정이 꽃으로 피어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지쳐 애잔하고 슬픈 사연을 안은 채 모가지가 꺾여 처절하게 나뒹구는 꽃이다. 피눈물이 맺혀 시뻘겋게 멍이 든 여심화는 어느 한 많은 여인의 넋이 꽃으로 환생했다는 동백꽃이다.
내가 만난 여심화는 춘설 깊은 곳에서 매운 향내를 토해 내는 매화처럼 고매한 기품도, 따사로운 봄날 만개한 벚꽃처럼 눈을 시리도록 하는 화사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슴 설레며 먼 길 달려간 나에게 찰나의 순간이나마 동공瞳孔을 정지시키고, 탄성을 우려낼 정도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에 뭉클함이 처연하게 번져 와 슬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차가운 겨울, 매서운 눈바람,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청록색 이파리는 매끄럽게 윤기가 나고 꽃은 선홍빛으로 물든다는 여심화가 애처로웠다. 동박새의 작은 날갯짓에도 슬픈 여인의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애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내 가슴을 저미게 했다.
“해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발갛게 멍이 들었소.”(후략)
‘동백아가씨’ 노래는 몇 해 전 영원한 사랑을 찾아 멀리 떠나간 절골〈寺谷〉 고모의 노래다. 고모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렀다.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들릴 듯 말 듯 이 노래를 뱉어내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고모를 ‘동백아가씨’라고 불렀다. 고모가 왜 이 노래만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고모에게 남다른 질곡 같은 삶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고모의 노랫소리는 고모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한을 토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모는 열여덟 살 꽃다운 나이에 재 너머 절골 마을, 가난한 농가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시집간 지 이태 만에 딸 하나를 남겨 놓고 고모부는 육이오 전쟁에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가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고모는 지아비 없는 죄로 내려다보고 살아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웃 사람들은 근거도 없이 생사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고모부가 북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까지 씌워 일가친척들까지 고모를 멀리했다. 시부모님은 맏아들을 잃은 슬픔에 두문불출했고, 며느리 잘못 들어와 집안 문 닫게 되었다며 모든 것을 고모 탓으로 돌렸다. 그때마다 고모는 입술이 퍼렇게 멍이 들도록 깨물며 온갖 아픔과 괴로움을 안으로 삭이며 살아야만 했다. 수절이라는 족쇄에 묶여 첫 댕기를 풀고 연을 맺은 사람과는 결코 남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살아서 못 만나면 죽어서라도 만나겠다며 부부 사이에 놓인 벼리綱를 굳게 잡고 놓지 않았다. 아침저녁 밥 한 그릇 떠 놓고 두 손 모으는 것이 고모의 신앙이었다.
전쟁 통에 행방불명된 남편을 오늘 오겠지 내일 오겠지 하면서 남은 가족들의 아픈 가슴을 보듬고, 상처 난 가정을 치유하는 가장이 되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운명, 가장이라는 멍에가 스무 살 새색시에게는 너무 무겁고 가혹했다. 시부모를 공양하고, 어린 시동생 육 남매와 당신 자식 뒷바라지에 칠십 평생을 보냈다. 손발톱이 닳아 문드러지도록 농사일을 하는 동안 등은 굽에 길맛가지가 되고, 얼굴에는 비탈 밭에 긴 장맛비가 훑고 간 것처럼 검은 주름이 깊은 고랑을 이루었다.
그렇게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았지만, 고모에게 남은 것은 수절과부가 전부였다. 살아생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랑을 이승에서는 끝내 만나지 못하고, 수절과부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은 채 어느 겨울, 차가운 눈비를 맞으며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나는 갇혀 사는 것 싫다. 죽어서는 새가 될란다.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내 눈으로 늠이 아배 만나고 마음껏 놀러도 다닐란다.”
화장해서 높은 산에 뿌려 달라는 유언은 있었지만, 어쩐지 남은 친지의 가슴속은 편치 않았다.
고모는 한평생을 세상이 갈라놓은 사랑과 삭막한 현실의 누명에 쓰러져 가는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살았다. 남편 없이 사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친정 나들이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뭄에 콩 나듯이 왔다가는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당신 어머니 제삿날이면 음복 술 한잔에 “어무이요, 나는 이제 기다리는 것도 지쳤습니다. 제발 내 좀 빨리 데려가 주이소.” 눈물 반, 웃음 반으로 ‘동백아가씨’ 노래를 구슬프게 토해 내곤 했다. 이 노래 한 곡으로 온 집안 친지 가슴에 못을 박던 동백아가씨, 고모는 소원대로 새가 되었을까?
이른 봄 동백나무 숲에서 이 꽃 저 꽃 찾아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동박새처럼 고모도 예쁜 동박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평생 가슴에 그리던 고모부도 만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 오래오래 나누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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