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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틀 / 정명숙

/ 정명숙

 

 

 

가두려고 하는 게 본질이다. 자신을 꼭 닮은 물건을 만들어 내야 직성이 풀린다. 사물이야 틀로 모양을 잡는다지만 발상도 행동도 자유로운 인간마저 집어넣으려 든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틀에 가두고 때로는 타자도 가두려 든다.

친정 부모는 매년 수확한 흰공으로 메주를 만들었다. 다섯 말의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드는 일은 연로하신 친정 부모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메주를 만들었지만 점점 양이 늘어나다 보니 아버지는 나무판을 다듬어 메주 틀을 만드셨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매끈하고 예쁘게 나오는 메주를 볼 때마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떠나시던 해 심었던 흰콩을 수확하니 한 말 반 정도가 되었다. 작물도 주인의 손길이 끊기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보다. 예년의 절반도 안 돼 더 애잔했다. 이제는 필요없다며 벽에 걸린 메주 틀이며 해묵은 콩 자루를 내어주던 친정어머니 모습은 몹시 허허로웠다.

며칠째 내린 눈 위를 찬바람이 쓸고 간다. 춥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 콩을 불렸다. 마당 한쪽에 걸어놓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폈다. 서 말의 콩을 삶으려면 꼬박 이틀이 걸린다. 색깔이 짙어질 때까지 푹 삶았다. 메주 틀에 광목을 깔고 찧은 콩을 넣어 꼭꼭 밟아 꺼냈다. 마치 칼로 자른 듯 매끄럽고 반듯하다.

메주 틀을 행주로 닦고 또 닦았다. 마치 그리운 아버지 얼굴을 씻겨드리듯 정성을 다한다. 아버지는 이 틀을 쓰는 동안 자식들의 삶도 매끄럽고 반듯하길 기원하셨을까. 누구나 걸어야 하는 인생길이지만 당신도 가족의 삶도 반듯하길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말없이 행주질만 하는 나에게 옆에서 잔일을 도와주던 딸이 조심스레 말을 건다.

"엄마, 그거 할아버지 유품이네."

꾹 참았던 눈물보가 터지고 만다.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씨 뿌리고 가꾸다 거두지도 못하고 떠나셨지만 나는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것조차 애잔한데 하물며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신 메주 틀은 오죽하랴.

일정한 모양을 잡는 게 틀이다. 물건이 종류마다 틀이 다르듯 사람에게도 저마다 틀이 있다. 자신을 가두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를 틀에 박힌 사람이라 하며 그런 사람은 타인과의 갈등으로 상처를 주면서도 상대를 탓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러운 틀로 포용하는 사람도 있다. 각기 다른 틀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틀이 그러했다.

부모 자식, 부부와 친구 사이에 다툼이 없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의 틀을 인정해 주고 가족들의 틀이 서로에게 부드럽게 녹아들 수 있게 말없이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견고한 그 틀에서 꿈을 키우도록 배려하셨다. 자식의 틀이 성에 차지 않아도 완성되기를 기다리셨고 틀에서 벗어나도 반드시 돌아오리라 믿고 탓하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를 겉만 닮는다 했던가.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하지 못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걸 보고 자랐으나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족들을 내 틀에 맞추려다 상처받고 벗어나려고 하기도 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틀이 사회질서를 유지해 준다는 걸 알면서 감정이나 욕망을 억압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야 서로의 틀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인지 깨달았지만 쉽게 내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생전, 아버지는 힘닿는 데까지 농사지어 콩은 줄 테니 직접 메주를 쑤어 보라 하셨다. 말씀대로 아버지는 가을이면 돌까지 골라낸 깨끗한 콩을 서너 말씩 주셨다. 장독대에 된장 단지가 매년 늘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살림하는 재미가 났다. 묵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된장이 아니던가. 나는 가을이면 메주콩을 서 말은 꼭 삶아야 한다는 새 틀을 만들었고 아버지는 나이 들어가는 딸에게 진정한 어미의 틀을 완성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메주콩을 산다. 혹여 틀어지지는 않았을까. 벽에 걸렸던 메주 틀을 살펴보고 닦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끄럽고 반듯하게 살라는 무언의 교훈이 담겨 있는 메주 틀, 어떤 유품보다도 소중한 그 틀을 보노라면 그리운 내 아버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