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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배냇소와 빨랫비누 / 김순경

배냇소와 빨랫비누 / 김순경

 

 

 

산길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가끔 울리는 요령 소리가 정적을 깰 뿐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떠났던 주인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냇소는 늘 걷던 대로 걸었다. 작은 목테를 두른 철없는 송아지는 사립문을 나서자마자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강을 건너자 날마다 풀을 뜯기던 산등성이에 올랐다. 다시는 데려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뭇가지로 엉덩이를 때렸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우시장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할아버지는 배내로 얻은 송아지부터 팔고 주둥이가 유난히 검은 암소를 샀다. 뿔의 형상이나 골격을 보니 더 클 것 같지 않은 중간 소였지만 농사짓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하시면서 바로 고삐를 넘겨받았다. 더 크고 잘 생긴 소들이 많은 데도 유독 아담한 암소를 선택한 것은 돈 때문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새 식구와 집으로 가시고 나는 배냇소를 몰고 외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외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뙤약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목덜미에 땀띠마저 돋아 있는 외손자와 무표정한 소를 번갈아 보셨다. 소는 제집을 아는지 비어 있는 외양간에 순순히 들어갔다. 하직 인사를 하려는 순간 외할머니는 다음 장날에 가라고 하셨다. 어떻게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온갖 핑계를 둘려대도 막무가내였다.

장날이 돌아왔다. 아침을 먹자마자 외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쪽머리에 비녀를 찌른 한복차림이었으나 생각보다 걸음이 빨랐다. 자갈길을 걷는 내내 묻는 말은 지난 닷새 동안 주고받았던 대화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딸의 시집살이를 우회적으로 묻는 할머니에 관한 것이라 신경 쓰였다.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해가며 적절하게 둘러대느라 땅만 보고 걸었다.

외할머니와 함께 장을 둘러보았다. 근처에서 가장 큰 장이라 그런지 처음 보는 장면이 많았다. 바이올린과 해금 소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약장사 앞에는 어찌나 구경꾼이 많은지 어떤 모양을 하고 무슨 약을 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근 산과 바다가 가깝다 보니 산나물부터 해산물에 이르기까지 다 있었다. 볼 것도 많고 궁금한 것이 많아도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느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돌고 돌아 옷 전앞에 멈췄다. 옷가게 주인은 대번 나이를 묻더니 두세 살 많은 아이가 업는 옷이라며 들고 나왔다. 쑥떡베 반바지와 오색 줄무늬가 선명한 러닝셔츠를 입어보라고 했다. 옷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도 당시 유행하던 패션이라 말없이 입었다. 며칠 동안 입었던 옷에 배인 땀내보다 특유의 새 옷 냄새가 좋았다. 소 먹인다고 고생했다면서 십 원짜리 지폐 석 장도 손에 쥐여 주셨다. 엉거주춤 들고 있다가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혼자서 한 번 더 돌았다. 햇살이 두꺼워지자 장꾼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유독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가정 필수품인 검은 빨랫비누와 고무줄을 팔았다. 한참을 지켜봐도 불티나게 팔렸다. 비누는 석 장에 이십 원이고 고무줄은 여섯 개에 십 원이라 우리 동네보다 훨씬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돈을 주고 둘 다 샀다. 싸게 샀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빨리 자랑하고 싶어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비누 석 장을 들고 한여름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삼십 리를 걷다 보니 열기에 물러진 시꺼먼 빨랫비누는 개미허리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팔이 아파 막대기 끝에다 매달아 어깨에 둘러멨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여름 해는 어느새 저녁노을에 빠져들었다. 사립문을 들어서자 어깨너머 작대기 끝에서 대롱거리는 빨랫비누를 본 식구들은 우습다고 난리였다.

물자가 귀한 귀할 때였다. 생활용품마저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었다. 짧은 고무줄도 모아두었다가 이어서 쓰고 비누도 말려가며 쓸 때였다. 가난한 소작농 자식들은 초등학교만 마쳐도 고무신이나 합판 공장에 들어가려고 도시로 몰려갔다. 고학력자도 일자리가 없었다. 땅을 파고 환자 돌보는 일자리를 찾아 다시 돌아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때는 어디를 가도 베이비붐 세대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었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일이다. 고향을 등지고 먼 곳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우울하던 정미년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암울하던 가족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그 일은 한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회자되었다. 점점 퇴색되어 가는 기억 중 하나다.